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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414>에필로그<2>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8. 7. 3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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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1998225일 취임사(사진. 대통령기록관)에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다면서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가르치고 대학입시에서도 컴퓨터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통령은 국정(國政)을 꼼꼼하게 챙겼고 국정 운영에 관한 사항을 깨알같이 기록한 27권의 국정노트를 남겼다.

김 대통령은 문민정부시절 추진한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 등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검찰수사를 지시했다. 이 수사로 잘나가던 정보통신부 고위 관료들이 검찰에 소환돼 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당시 정홍식 차관 구속에는 동정 여론이 많았다. 국회조차 정 차관 구명에 나서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청와대 10년 근무기록을 가진 그는 많은 정책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취재에 그의 도움이 컸다. PCS수사 후유증은 컸다. 이 사건 후 정보통신부 출신 관료중 한사람도 장관에 발탁되지 못했다. 정 전 차관은 2000814일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조치에 따라 사면·복권됐다. 기자는 검찰 수사과정에 가려진 많은 뒷이야기를 취재했으나 기사화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을 즐겨 사용해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2003225일 취임사에서 농경 시대와 산업화를 거쳐 지식정보화 시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으며 고급 두뇌와 창의력, 세계 일류의 정보화 기반을 갖고 있다과학기술을 부단히 혁신해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는 과기부총제를 도입했다.

노 대통령은 야인이던 1993년 사무실에 그룹웨어를 설치해 전자결재를 한 적이 있었고 청와대 이지원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등록을 할 정도로 IT분야 전문가였다. 노 대통령은 전자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장관이나 보좌관에게 수시로 내용을 확인해 관계자들을 늘 긴장시켰다.

노 대통령은 정보통신부와 과기부 폐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에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일은 신. 구 정권 간 불화의 씨앗이 됐다.

정보통신부 출범의 산파역은 윤동윤 체신부 장관이다.

체신부 관료로 사무관부터 승진해 장관까지 오른 인물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윤 장관은 정보통신에 확고한 신념과 해박한 지식,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체신부 숙원이던 정보통신부 출범을 성사시켰다. 그는 CDMA를 세계 첫 상용화했고 이를 반대하던 삼성의 체신부 출입을 금지시킨 일은 지금도 화젯거리다.

경상현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은 미국 mit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5년 해외과학자 유치프로그램에 의해 귀국했다. 이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 한국전산원장 , 체신부차관을 지냈다. 그는 PCS표준으로 CDMA를 고수했다. 청와대의 요구도 거부했다. 김 대통령이 통신사업자선정 방식에 대로(大怒)해 경 장관을 경질했지만 내막은 CDMA방식 고수였다.

그 뒤를 이어 취임한 이석채 장관은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그는 청와대에서 “CDMA를 고집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김 대통령과 독대해 CDMA방식을 관철시켰다. 그는 재임 중 정통부에 정보화기획실을 신설했다. 그는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 김대중 정부 들어 검찰수사를 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논리가 정연하고 달변이었다.

강봉균 장관은 초등학교 교사출신으로 1969년 행정고시 6회에 합격,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박정희 정부의 개발시대 최고의 보직이라는 경제기획국장을 두 번씩이나 맡았다. 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김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청와대 정책기획, 경제수석을 거쳐 재정경제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기업 CEO출신 장관 시대가 열렸다.

그 첫 스타트는 배순훈 대우전자 회장이다. 그는 우정사업에 민간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배 장관은 김 대통령이 재벌 개혁의 핵심으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한 5대 그룹 빅딜 `반대발언으로 물러났다.

후임 장관으로 남궁석 삼성SDS 사장이 새 정통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사이버코리아 21운동을 전개했다.

안병엽 장관은 행정고시(11)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안 장관은 199675일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 초대 실장으로 임명됐고 차관 재임 18개월 만에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재임 중 IMT-2000사업자 선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안 장관이 물러나자 장관으로 양승택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이 발탁됐다. 그는 TDXCDMA개발 주역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장관으로 이상철 KT사장이 임명됐다. 그는 이동통신사에 첫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고 KT를 민영화했다. 재임 중 인터넷대란이 발생했으나 수습에 능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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