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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추억

여행. 맛집. 일상

by 문성 2010. 2. 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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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경건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하얀 햇살을 받으며 조상님 차례를 거실에서 모셨다. 차례상에 떡국을 올리고 세배를 드렸다.  


오늘 차례는 단출하게 모셨다. 동생은 경북 시골에서 살고 있다. 설 전날 눈과 비가 내린데다 연휴가 짧아 전화를 해 오지 말라고 했다. 오면 가기 바쁜데 멀리 오라는 것이 미안했다. 매년 오던 동생들이 막상 안오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까지는 내가 집안의 맏이라 서울의 친척들이 명절만 되면 우리집으로 다 모였다. 작은 집 사촌들까지 합쳐 대략 30여 명에 달했다. 집안이 북적 북적해 명절 기분이 났다. 

 
아내는 명절이 돌아모년 며칠 전부터 걱정을 했다. 음식 준비하고 친척 맞는 일이 힘에 버겁기 때문이다. 설 전날부터 종일 음식을 마련해 놓았다. 설날 아침 숙부님을 비롯한 동생들이 차례를 모시기 위해 집으로 왔다.
차례가 끝날 때까지는 정신없이 바빴다. 우리 집안 어른들은 성격이 급해 차례 모시는 시간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살던 집이 24평짜리로 좁아서 30여명이 오면 앉을 자리가 모자랐다. 차례를 모신 후  밥도 2교대로 먹었다. 신발을 놓을 곳이 없어 일부는 문밖에 놓았다. 그러던 것이 몇해 전 숙부님이 돌아가시고 아내가 몸이 아파 예전처럼 친척들이 다 오지 않는다.  최근에는 동생들만 명절 아침에 와서 차례를 모셨다. 


 아들과 설날 차례를 끝내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해 아내와 커피를 마셨다. 창밖을 내다보니 거리가 한산했다.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햇살만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문득 어릴적 시골에 살면서 설을 쇠던 생각이 났다.
조부님은 조부형제 중 막내였다. 그래서 우리 집이 작은 집이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새옷으로 갈아입고 큰 집으로 차례를 모시러 갔다. 새옷이라고 해봐야 곱게 빨래를 한 옷이다. 고무신도 말끔히 닦아 신었다.  

 
검정 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아버지를 따라 큰 집으로 갔다. 우리 집은 큰 집과 1.5키로 정도 떨어져 살았다.
설날 아침 눈이 하얗게 쌓인 길을 걸어가면  “뽀드득 뽀드득” 눈밟히는 소리가 났다.  그 당시는 겨울이면 많은 눈이 자주 내렸다.  어느 해인가는 가래로 눈을 치우며 큰 집으로 차례를 모시러 간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돋화속 그림을 보는듯한 기분이다. 


큰 집에서 차례를 모실 때는 어른들만 방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마루나 마당에 멍설을 깔고 절을 했다. 대가족제여서 모인 친척들이 수십명은 너끈히 됐다. 좁은 방은 어른들만  들어설 수 있었다.

 
추워서 입에서 하얀김이 나오고 손이 시려도 아이들은 만남의 기쁨에 추위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차례 도중에 옆 아이와 장난치며 “킥킥”거리다 어른들한테 주의를 받기도 했다. 어릴 때는 한번 웃음이 터지면 쉬 그치지 않았다.
 

“누가 차례모시는데 장난치는 거냐”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게 단체로 새배를 드렸다. 어른들의 덕담은 해마다 거의 같았다.

“공부 잘해라”“어른 말 잘들어라”“몸 튼튼해라”

 아이들은 한곳에 모여 어른들이 주는 과일이나 떡을 먹었다. 지금처럼 새뱃돈을 주는 일은 없었다. 주로 곶감이나 사과, 배, 문어다리 등을 잘게 잘라 아이들 수대로 골고루 나눠 주었다. 그 당시는 그 맛이 꿀맛보다 더 좋았다. 

 
어른들만 방안에서 막걸리를 곁들어 식사를 하셨다. 그 당시는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 마셨다. 한 해의 집안 대소사를 그 자리에서 다 말씀하셨다. “허허”하는 웃음소리가 방 바깥까지 들리기도 했다. 


큰 집에서 차례가 끝나면 둘째 집으로 가서 역시 같은 식의 차례를 모셨다. 그러다 보년 막내인 우리 집은 오후 새참 무렵이나 돼서 차례를 모셨다.  친척들은 무리를 지어 큰 집과 둘 째집을 거쳐 다시 우리 집으로 걸어왔다. 자동차는 커녕 자전거도 없던 산골 마음이어서 모두 걸어서 다녔다.  

 
우리집 차례까지 모시고 나면 금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그래도 그 당시는 고기나 떡을 먹을 기회가 추석이나 설, 제삿날 밖에 없었다.  못먹고 못입던 그야말로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때 일이 몹시 그립다.  고생스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다. 그 때는 콩한쪽이라도 나눠 먹었다.  친척간에 우애있고 도화지처럼 마음이 순수했다.


그 시절, 내가 세배 드리던 어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모두 고향 뒷산에서 긴 잠에 들었다. 부모님도 조상님 옆에서 잠들어 있다.

세월은 무심하지만 여여하게 흘러간다.  세월속에 아름답고 괴롭고 슬픈 삶의 추억이 녹아 있다. 다시  갈수 없기에 더 가슴에 사무치는 추억이다.


 1년에 한 번 벌초 때나 가보는 고향이다.  혹 저세상에서 조상님들이 예전처럼 집안을 돌며 설날 차례를 모시고 계실지 알 수 없다. 
설날 아침.  어릴적 고무신을 신고 내가 걸었던 고향 마을의 정겨운 길을  오늘 누군가 만남의 기쁨속에 걷고 있을 것이다.  추억에 잠겨 잠시나마 머나 먼 고향으로 달려가 본 설날 아침이다. 아침 햇살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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