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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싹

여행. 맛집. 일상

by 문성 2010. 1. 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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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서 전원 생활을 하는 손위 동서가 땀흘려 가꾸고 수확한 고구마를 한 상자 주셨다.

고구마는 요즘 성인병이나 노화방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어릴적에는 신물나게 먹던 고구마였다. 

옛날 생각이 나 집에 오자마자 고구마를 꺼내 칼로 깍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상큼한 단맛이 입맛을 자극했다. 세월은 흘렀어도 생고구마 맛은 예나 변함이 없었다. 여름 한철 땀흘려 농사 지은 고구마를  형님 덕분에 도시에서도 맛볼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제대로 먹을 게 없던 시절에 겨울 내내 고구마를 가마니째로 뒷방에 보관하면서 먹었다. 낮에 칼로 깍아 먹거나 솥에 삶아 먹었다. 저녁 쇠죽 끊인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다. 못살고 헐벗던 시절의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다.


라면 박스에 든 고구마는 햇볕이 안 드는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

틈틈이 고구마를 꺼내 물로 깨끗이 씻은 후 솥에 넗고 삶았다. 잘 익은 고구마를 식혀 놓고 배가 출출할 때 하나 씩 맛있게 먹었다. 속이 노란 고구마는 달고 부드러워 먹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다. 몇 개 남지 않은 고구마를 마져 삶으려고 꺼내다가 나는 화들짝 놀랐다. 고구마 한 개에서 작은 새눈이 돋고 있었다. 자주 색 싹이 고개를 쏘옥 내밀고 있었다.

문득 어릴적 생각이 났다. 시골에서도 겨울에 보관하던 고구마에서 싹이 돋곤 했다. 이럴 때  빈 그릇에 물을 채워 고구마를 담아  놓으면 새눈이 무럭 무럭 자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순이 돋은 고구마를 꺼내 물로 말끔히 씻었다.

플라스틱 용기를 가위로 잘라 구멍을 내고 물을 채웠다. 그 위에 고구마를 깊게 담궜다. 고구마는 햇살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올려 놓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3일 지나자 삭막한 거실안에 초록색 고구마 잎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게 아닌가. 고구마 줄기가 지금은 한 자 가량이나 자랐다. 위로 올라가다가 힘이 부치는지 아예 옆으로 드러 누웠다.  한겨울 거실에 푸른 식물이 자라니 한결 마음이 풋풋했다.

 무럭 무럭 자라는 고구마 순을 보면서 나는 고구마의 강한 생명력 앞에 경이를 표했다.

 인간들은 저마다 잘난체 하면 자연을 훼손하고 가로수나 주위에 나무를 쉽제 잘라내곤 한다. 저 고무마의 잎이 저렇게 자랄 때까지 고구마는 얼마나 자신과 치열하게 투쟁했을까. 그런 것을 인간들이 알기나 할 까.


 잘 자라는 고구마 순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어느날 파랗던 고구마 순이 갑자기 누렇게 가을 낙엽처럼 변하고 있었다. 왜 이렇지. 고구마 통을 들여다보았더니 아이쿠 내 잘못이었다. 물이 말라 있었다. 갈증으로 고구마에서 나온 뿌리가 바싹 말라 허옇게 변해 있었다. 너무 미안했다. 서둘러 문을 가득 채워 주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튼날 아침에 고구마를 보니 시들시들하던 고구마 순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식물은 거짓이 없구나. 벼는 주인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고구마 순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나는 고구마처럼 강인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가.  조금만 힘들어도 세상을 미워하고 남을 탓하며  하던 일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가.

어둠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육신에 새 싹을 튀우는 고구마한테서 나는 강한 생명력과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고구마도 인간의 스승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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