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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 '적화차 타는 사람들'

이현덕의 책마당

by 문성 2020. 1. 1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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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갈피속에 숨어있던 오지 고향 추억이 안개처럼 뭉개뭉개 피어 올랐다.

 

세월 저 너머 잊고 살았던 그립고 슬픈 추억이다. 

 

결코 잊을 수 없던 배고프던 시절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호롱불 켜고 살았던 오지 거창 웅양면 신촌리 왕암 산골 고향. 요즘은 볼 수도 없는 초가에서 살았다. 빛바랜 흑백 영화같다. 하지만 그 시절 추억 또한 내 삶의 소중한 기록이다.

 

엊그제 고향에 사는 고종사촌 여동생이 보낸 책을 받았다. 적화차를 타는 사람들(사진). 내 고향 적화지역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14개 마을 이야기를 진솔하게 엮은 향토사였다.

 

첫 장을 넘기면서 나는 잊었던 추억여행을 떠났다책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들, 친구들을 만났다.

 

뒤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 이슬이 맺혔다. 적화차는 잊을 수 없는 버스다.  어릴적 내가 타고 다니던 바로 그 버스였다. 숱한 추억과 애환이 서린 적화차다.

 

적화는 경남과 경북 경계지역이다. 오지 산골이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도로가 없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차가 다니지 않았다. 지역 유지들이 앞장서서 거창에서 적화까지 도로를 개설했다. 이후 1960년 거창에서 웅양을 거쳐 적화까지 버스를 운행했다. 하루 1회 운행. 종점은 적화.

 

거창읍에서 오후 막차로 출발해 웅양을 거쳐 적화에 도착해 이튼날 아침 다시 거창으로 출발했다. 막차로 오후에 왔다 이튼날 첫 차로 떠났다. 거창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은 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중학교를 거창으로 진학한 나는 격주로 토요일 오후 왕바우로 왔다. 학교옆에 작은 방을 얻어 자취를 했다. 집에 와서 교복 등 빨래를 하고 쌀과 김치, 고추장 등 보름정도 먹을 양식과 반찬을 거창으로 가지고 갔다.

 

적화서 거창까지는 50여리. 집에 오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곤 했다. 당시는 주5일 제가 아니어서 토요일 오전 4시간 수업을 했다.

 

1학년 늦은 여름 어느 날. 그날 일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토요일 오후 들뜬 마음으로 버스터미널에 갔더니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손님이 없거나 혹은 버스가 고장나면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일이 간혹 있었다.

정말 난감했다.

 

 “쌀과 반찬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마침 그 자리에는 거창으로 진학한 적하 친구 서너 명도 있었다.

우리 걸어 갈까.”

이미 서산으로 해는 지고 있었다.

그래 좋다 걸어가자

 

그렇게 우리는 걸어서 적화로 향했다. 웅양에 도착할 무렵은 밤 10가 넘어 사방이 칠흑같았다. 그래도 부모님이 그리워 발길을 재촉했다. 당시는 가로등도 없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과 달빛을 등불삼아 적화에 도착했다. 사방은 고요했다. 자연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도착했더니 키우던 개가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어머니

기척이 없었다.

어머니

방안에 불이 켜지고 어머님이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아니 이 밤중에 웬일이나

 

자초지종을 들은 나를 와락 껴안아 주셨다. 그날 어머니 체온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이튼날 나는 어머님이 빨래 해준 단벌 교복을 입고 쌀과 반찬을 들고 배태고개를 넝어 대동이란 곳에서 버스를 타고 거창으로 왔다.

 

그 이듬해 어머니는 병으로 어린 5남매를 남겨놓고 한많은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몇 해 뒤 아버님도 우리 곁을 떠나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나는 3년간 적화차를 타고 집을 오갔다. 적화차를 타고 가면서 어머님이 그리워 남이 안보는 곳에서 돌아서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 책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적화 14개 마을의 동네 유래, 전설 등을 담아 마치 어릴적 동네 사람방에서 어른들로부터 옛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명필로 영남일대에 소문났던 조부님과 아버님, 고모부님, 인자하셨던 교장선생님, 친척, 친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머님 품속 같이 포근하고 정겨운 고향 이야기다.

 

이제는 앨범속 흑백사진 같은 추억이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니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되돌아 갈 수 없는 지난날 고향 추억을 되살려준 책이다.

 

책을 발간한 하성마을역사연구회는 지난 4, 하성단노을문화센터에서 적화차를 타는 사람들 : 거창, 적화 14개 마을 이야기책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저자 백종숙, 423. 발행 거창문화원. 하성마을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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