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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의 풍경소리

사찰기행

by 문성 2010. 5. 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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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봉은사의 5월 하늘은 티없이 맑았습니다.
근심 걱정도 없고 바쁜 일도 없이 그저 유유자적한 모습입니다. 자연은 이처럼 청정한데 왜 세속에서는 탁음이 나는 것일까요.


 


오늘 인터넨탈 코엑스에서 가진 조찬 모임에 참석했다가 맞은 편에 있는  봉은사에 들렸습니다. 봉은사는 도심 속의 천년 고찰입니다. 코엑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봉은사 일주문이 나타났습니다.

 

주지 명진 스님이 이곳에 온 후 불사를 많이 하고, 조경도 잘 했더군요. 불전함 관리도 신도회에 넘겼다지요. 1000일 기도원력도 실천했다고 합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도 새롭게 정비를 했고,  길 왼쪽 옆에 수로를 만들어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적한 시골 냇가를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일인데다 오전 9시 반경이라 그런지 약간 한산했습니다. 외국 관광객 7-8명이 가이드한테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찰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정문을 들어서자 봉은사가 세속 일에 부대끼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일주문 밖 담장에 “거짓말을 하시 맙시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더군요. 이는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과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칭하는 것임을 금새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 수석은 명진 스님과 김영국거사를 서울경찰청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입니다. 나중에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합니다.  명진 스님은 “제발 법정에서 만나자. 거싯말 탐지기를 가지고  진실을 가리자”고 말합니다.  안 의원은 이에 대해 말이 없습니다.

 

봉은사 일주문 앞 왼쪽 게시판에는 직영사찰과 외압설 의혹 등을 밝히라는 신도들의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모두 간절한 마음을 담았더군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요.  

 

일주문(진여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오색 초파일 등을 주렁주렁 달아놓아 연등축제장을 방불하게 했습니다. 신도들이 두 곳으로 나눠 연등을 접수하고 있었습니다.  연들을 보면서 어릴적 시골에서 가을에 곶감을 줄에 달아 놓았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마침 사시 불공을 하고 있더군요.  목탁소리에 맞춰 천수경 독경소리가 파란 하늘로 퍼져 나갔습니다. 대웅전에는 신도들로 꽉 들어차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대웅전 뒤 계단을 올라 가니 영산전과 지장전,북극보전, 판전 등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도 스님과 신도들이 경건한 자세로 예불중이었습니다.

 

판전이 눈에 확 뜨였습니다. 판전은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곳인데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판전이란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입니다. 추사의 추모비가 판전 앞에 세워져 있더군요. 이곳은 고시생 부모들이 와서 기도를 많이 한답니다. 기도효험이 있는 모양입니다.

 


왼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빈터에 하얀 대리석으로 조성한 대형 미륵보살상이 코엑스 뱡향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봉은사 경내에는 푸른 소나무와 붉고 흰 철쭉과 백합 등 등이 화사한 자태를 자랑했습니다. 길은  비로 말끔히 쓸어 휴지조각 하나 볼 수 없더군요. 이름 모를 새 들이 지저귔습니다.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새소리로 가득한 그야말로 도심속의 수행도량이란 말이 맞았습니다. 가슴 깊숙이 청정한 공기를 들여 마셨습니다.  

 

염불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청정해지고 편안해 졌습니다. 마음속 잡념을 버리니 편할 수 밖에 없지요.
불가에서 말하는 “내려 놓아라“ 하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법당 앞 약수에서 시원한 물을 한바가지 퍼 마셨습니다. 갈증도 사라지고 가슴이 시원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곳. 사찰에 오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봉은사가  왜 속세일에 휘말려 난리법석인지 모르겠습니다. 천년 동안 오직 부처님의 법을 전해 온 고찰이 “강남 부자절 좌파 주지” 란  말과 외압설 의혹, 직영사찰 지정 논란에 휘말리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권불10년이라는데 정치인들이 뭘 더 가지려고 정치다운 정치도 못하면서 경계가 다른 절집 일에 관여해 이런 불란을 자초했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가령 한 정치인이 천주교 대주교에게 특정 지역 교구장을 지칭해 " 정부에 비판적인데 그대로 뇌둬서 되겠느냐"고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기가 찰 일 아닙니까.


이런 논란에 대해 대화 당사자인 자승 총무원장이나 안상수 의원은 묵묵부답입니다. 불을 질러놓고 당사자들은 먼산만 쳐다봅니다.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총무원은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한다는데  제가 보기에 논리나 명분이 약합니다. 그러니 외압설 의혹을 받는 것 아닌가요.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독경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뒤로 하며 봉은사를 한바퀴 돌아 나왔습니다.
천년고찰은 여여한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간들이 주인인양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한줄기 허망한 바람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수를 모르는 인간군상이지요.

 

절의 주인은 신도와 사부대중입니다. 객이 주인을 제쳐 놓고 왜이리 간섭이 심한지 알 수없습니다.


봉은사를  나서는데  
"댕그랑” 하며 대웅전 처마끝의 풍경소리가 귓가를 울립니다.  "바르고, 맑게, 향기롭게 살아라" 하는 법어처럼 들립니다.    "마음 한 번 돌리니 여기가 극락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태양은 빛나고 하늘은 파랗습니다.   도심속 천년고찰을 나오는데도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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