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산파역 윤동윤 장관<1>
윤동윤 체신부 장관(사진.전자신문)은 IT꿈을 향해 끝없이 항해한 정통 관료다.
그의 체신 외길 인생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정보통신부 출범의 산파역’. “CDMA개발의 주역” “성공한 장관“ 등이다.
그는 서울대법대를 졸업한후 행정고시 3회에 합격 66년부터 행정 사무관으로 체신부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과장, 국장, 실장, 차관 등 마치 계단을 오르듯해 문민정부들어 장관으로 발탁됐다. 체신 관료로 장관까지 오른 사람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긴 체신항로에서 그가 이룩한 공적은 많다. 그는 체신부 장관시절 IT강국위한 정보통신부를 출범시킨 총지휘관이었다. 선이 굵고 소탈한 성품이나 업무에 관해서는 치밀하며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폭이 넓은데다 보스 기질이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는 체신관료의 간판이자 후배들이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그는 94년 12월 3일 정부조직개편에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하는데 산파역을 했다.
정보통신에 관한 해박한 이론과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초지일관 정보통신부 설립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중학교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인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경상현 차관, 이게철 기획관리실장, 박성득 정보통신정책실장 등 모든 체신공무원들이 국회와 청와대 등으로 뛰었다.
윤 장관의 증언.
“정보통신부 신설은 80년대부터 거론됐어요. 오랜 숙원이었어요. 국가정보화와 정보화를 선도할 전담부서로의 변신은 불가피했습니다. 여론 확산과 논리개발을 위해 수 년동안 각종 학회 등을 지원했습니다.”
그는 장,차관 재임시 서울대에 500억 여원을 지원했다. 서울대는 이 자금으로 93년 연건평 5289.11m2에 지하1층, 지상4층의 건물 공사를 시작, 93년 6월 완공했다. 이 건물이 서울대 행정대학원 57동이다. 서울대는 92년 11월 정보통신 행정연구소를 설립한데 이어 95년 10월부터 징보통신방송정책과정을 개설했다.
체신부 기획과장이었던 서영길과장(정보통신부 정책지원국장.TU미디어사장 역임. 현 SKT고문)의 증언.
“윤 장관께서는 정보사회에 대비해 관련 학계나 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각종 학회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전자공학회와 통신학회뿐만 아니라 행정학회, 심리학회 등 이공계와 인문사회계열의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각 학회마다 국가발전과 정보통신의 역할, 미래 사회의 유망직업, 일과 미래, 정보통신이 국가사회에 미치는 영항 등 과제를 맡기고 학술대회도 후원했다.
이런 것이 정보통신부 신설의 여론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학계는 정보통신부 출범을 적극 지지했다. 93년 4월 출범한 행정쇄신위원들도 정보통신부 출범에는 이견이 없었다.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7> (0) | 2010.07.07 |
---|---|
정보통신부-그 시작과 끝<16> (0) | 2010.07.02 |
정보통신부-그 시작과 끝 <14> (0) | 2010.06.28 |
정보통신부-그 시작과 끝<13> (0) | 2010.06.25 |
정보통신부-그 시작과 끝<12> (0) | 2010.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