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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 <37>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0. 9. 1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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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뒷이야기-1


정보통신부가 PCS접속방식을 CDMA단일표준으로 결정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험난한 협곡을 지나는 것처럼 고비가 많았다.  미국은 칼라힐스를 앞세워 정부의 정책변경을 압박했다.
기업들도 당초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 과정에 뒷이야기가 많았다. 급박했던 막전막후의 커튼을 들쳐보자.

 

95년 10월초 어느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과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이 배석자없이 만났다. 한 실장 요청으로 이뤄진 오찬자리였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얼굴에 미소가 흘렀지만 서로 속내는 복잡했다. 한 실장은 CDMA방식을 고집하는 경장관을 설득하려 했다. 경장관은 CDMA방식의 당위를 확실하게 한 실장에게 못박고자 했다. 동상이몽의 자리라고 할까.


한 실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정부가 CDMA를 단일표준으로 고집할 이유가 있습니까. 국가 전체로 볼 때 가능하면 갈라힐스의 요구를 들어 줄수 있으면 들어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국익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해 주십시오“


한 실장은 칼라힐수와 교분이 두터웠다. 한 실장이 주미대사시절 칼라힐스는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였다. 대표를 물러난 칼라힐스는 신세기통신의 지분 11.4%를 가진 미국 에어터치사의 법률고문으로 일했다. 그는 10월초 내한해 청와대와 경제기획원, 상공부를 오가며 신세기통신에 TDMA방식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 장관이 정통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정통부로서는 칼라힐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요구를 들어주면 우리가 국책사업으로 애써 개발한 CDMA기술은 사장(死藏)되고 말 것입니다. CDMA기술을 우리가 세계최초로 상용화하면 한국은 기술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을 도입하고 국책사업으로 추진중인 정통부가 어떻게 이 일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칼라힐스가 이 문제를 가지고 불공정 무역 행위로 제소라도 하면 한국과 미국관계가 아주 껄끄럽게 됩니다. 이 문제는 큰 틀의 국익차원에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당연히 국익을 최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정통부는 국익을 위해 CDMA개발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 실장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국과의 통상문제 등을 생각하면 칼라힐스의 요구를 고려해 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칼라힐스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요구를 수용하면 CDMA개발은 실패합니다. 신세기통신에 CDMA기술을 조건으로 사업권을 허가했는데 그 원칙을 정부가 지키지 않는다면 국가이익에 반하는 일입니다. 신세기통신에도 결코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한 시간여의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이 타결점을 모색했지만 현격한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한 실장이나 경 장관이나 국익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접근방식은 차이가 있었다.



한 실장은 통신분야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는 시각에서 이 문제 해법을 생각했다. 당시 청와대는 미국의 협조를 구해야 할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었다.
경 장관은  자신이 앞장서서 도입하고 개발한 기술을 사장화하는 그런 정책 변경은 절대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 일과 관련해 경장관은 칼라힐스를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가 칼라힐스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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