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10월 20일 기술표준 단일화를 발표한 뒤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그 중심에 한국통신이 서 있었다.
한국통신은 정부 방침 발표 닷새후 인 10월 25일 “PCS의 접속방식으로 TDMA기술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통신은 ”스웨덴의 에릭슨사와 캐나다 노던델레콤 등 2개사와 TDMA방식의 기술도입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통부는 정부 정책에 엇박자를 놓은 한국통신의 이런 반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10월 말경. 김 기술심의관은 이준 사장(1군사령관 역임. 육군대장 예편. 국방부장관 역임)을 방문해 정부 입장을 전했다.
“한국통신의 복수표준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기간 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서는 안되는 일 아닙니까. 사장님이 대국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평생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하며 살았어요. 한국통신보다는 국가를 생각합니다. 사내 기술진들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겠습니다”
김 기술심의관은 사장실을 나와 김노철 부사장(체신부 통신기술과장 역임)을 찾았다. 김 부사장이 체신부 통신기술과장 시절 김 기술심의관은 그 밑에서 사무관으로 일했다.
“ 정부 방침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이준 사장께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사장께서 홍보실장을 불러 한국통신도 CDMA방식으로 한다고 발표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논란을 수습할수 없습니다.”
이런 막후노력으로 한국통신은 10월 31일 TDMA방식을 포기하고 CDMA방식의 PCS를 개발키로 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통신 내부에서 이같은 언론발표를 놓고 사단이 벌어졌다고 한다.
김 기술심의관은 이에 앞서 한국통신 사업개발단장이던 이상철 단장 ( KTF. KT사장. 정통부 장관. 광운대 총장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회장)과도 몇 차례 만나 CDMA단일표준의 당위를 설명하고 타결책을 모색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만 그었다. 이 단장은 명석한 두뇌와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오히려 TDMA도입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려 했다.
이 단장의 친형은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과 같은 육사 11출신인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현 애국단체총협의회 상임의장 )이다. 당시 이 준사장은 육사 19기로 이 사장의 후배였다. 이 단장을 추천한 인물은 육사 11기로 수재인 김성진 장관(체신부. 과학기술부장관 역임. 작고)이었다. 이런 상황이어서 한국통신 내에서 그의 주장을 반박할 논리의 소유자는 없었다.
나중에 정홍식 정통부 정책실장(정통부 차관. LG데이콤부회장 역임)이 이 단장을 불러 설득했다.
“이 단장, 한국통신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정부 정책에 언제까지 반대만 할 겁니까. 한국통신이 반대한다고 정책을 변경해야 합니까. 이제 그만 입장을 바꾸세요.”
뒷날 이상철 한국통신사장이 정통부 장관으로 발령날 무렵 김기술심의관은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이었다. 과거 정부 정책입안자와 사업자의 갑, 을 관계에서 상.하 관계로 만난 것이다. 하지만 서로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감정의 골이 파이거나 앙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 기술심의관의 후일담.
“어느 자리에서 제 이야기가 나왔대요. 참석자 누군가가 김실장은 대인관계가 부드럽고 유연하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당시 이 장관이 ‘당신은 김실장을 잘 모르는구먼. 김실장이 얼마나 주관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있는지 당해 본 사람만 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어요. 그게 CDMA표준당시 상황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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