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30일 서울 종로경찰서 이택순 서장(경찰청장 역임)과 중부경찰서 최광현 서장(해양경찰학교장 역임)이 각각 조계사와 명동성당을 방문해 농성중인 노조간부들의 연행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6월 3일 경장관은 비공개로 관계기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이승완경찰청차장과 서병호 공보처실장, 김상남 노동부 기획관리실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 후 서영길 정통부 공보관은 “법집행에 예외가 없어야 법질서가 회복될 수 있다.”며 공권력 투입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경찰은 6월 6일 오전 8시께 한국통신 노조간부 13명이 농성중인 서울중구 명동 성당과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경찰병력을 전격투입,전원을 연행했다.
조 사장의 증언.
“한달 반 정도 노조측과 협상을 했어요. 임급협상안도 합의했는데 노조찬반 투표에서 부결됐어요. 나는 공권력 투입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
이날 오후 한국통신 노조는 강제 연행에 반발해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했다. 조 사장은 간부들을 긴급 소집했다. 그리고 탑골공원으로 달려갔다. 간부들과 경찰들은 조 사장이 탑골공원에 나타나는 것을 말렸다. 흥분한 노조원들과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서였다.
조 사장의 상황 설명.
“나는 돌맹이를 맞더라도 가야한다고 판단했어요. 사장이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조가 만들어 놓은 연단에 올라가 노조원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30분만에 노조원들을 해산시켰다. 경찰은 노조원들은 연행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조백제 한국통신사장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이준 예비역육군대장을 임명했다.
이와 관련한 조 사장의 기억.
“오후 3시경 회사로 오는 도중에 경장관이 전화를 하셨어요. 그런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하더니 말을 안해요. 회사로 와서 쉴까 하다가 장관한테 결과를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해 장관실로 올라 갔더니 설합에서 팩스로 받은 이력서를 하나 내보였습니다. 후임 사장 이력서라며 경질사실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는 1시간 후에 4시경 퇴임식을 열고 2년 반 가령 몸담았던 한국통신을 떠났다.
교수 출신으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을 거쳐 한국통신 사장에 취임한 그는 한국통신을 세계일류 기업으로 키우기 박사들은 집행라인에 배치해 민영화의 기틀을 다졌고 부조리와 인사청을 사장이 앞장서서 척결했다고 한다.
노사관계에 대한 조 사장의 말.
“노사는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노조가 경영자 역할을 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경영자는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설탕은 달아야 하고 소금을 짜야 하는데 이것을 혼합해 보세요. 무슨 제맛이 나겠습니까. 노사관계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습니다.”
경 장관의 증언.
“청와대에서 후임을 발표 한 후에 제가 사장 제청서에 서명해 보냈습니다. 당시는 그랬어요”
양측의 입장차이기 좁혀지지 않자 한국통신측은 7월 15일 중앙노종위원회에 쟁의중재신청을 냈고 노조도 이에 맞서 파업을 결의하는 등 정면대결의 양상을 보였다.
통신대란의 우려를 자아냈던 한국통신사태는 7월30일 유덕상 노조위원장이 경찰에 자수함으로서 분규 75일만에 한고비를 넘겼다.
유 위원장은 당시 고속모뎀이 장착된 486노트북과 휴대폰, 무선호출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노조파업을 지휘했다.
유 위원장의 말.
“당시 한국통신은 하이텔(현 파란) PC통신서비스를 하고 있었어요. 노조원들이 블로그같은 홈페이지를 구축해 운영했어요. 그곳을 통해 투쟁지침을 내렸습니다“
퇴임한 조 사장은 당시 감사원장을 상대로 명예훼손혐의와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직접 작성한 소장에서 “쥐잡으라는 고양이가 쥐는 잡지 않고 씨앍닭은 잡아 먹었다”는 비유로 당시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년 6개월 후 주위 권유와 대승적 차원에서 소송을 취하했다. 그는 퇴직금으로 받은 1천7백여만원을 변호사비용으로 전액 사용했다고 한다.
그후 그가 명지대학교 석좌 교수를 거쳐 연구담당부총장시절 우연히 같은 대학에 당시 감사원장이 석좌 교수로 나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혹시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모든 것을 털고 편하게 대하자고 마음을 정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대학으로 옮겨 가고 없어 조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10년 KT노사는 첫 무분규 임단협을 체결했다.
KT노동조합은 지난해 민주노총을 탈퇴한데 이어 지난 3월5일 서울 서초동 KT올레캠퍼스에서 이석채 회장과 김구현 노조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취약계층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벌이는 등 신노동운동(‘HOST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화합과 나눔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겠다는 뜻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노사의 모습이다. 이런 진통을 거쳐 한국통신은 민영화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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