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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61>

암자일기

by 문성 2011. 1. 2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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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아내는 내 삶의 동반자다.
그런 아내한테 정말 잘 해 준 게 없다.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 고생만 시켰다.

지난 2002년 8월 아내가 십이지장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아내는 중환자실에서 닷새 간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환자 상태가 위중해 가족 면회도 하루 세 번 만 할 수 있었다. 중환자실은 심하게 말해 사망 가능성이 높은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는 병실이다.  
 
그 당시 나는 아내 곁을 지키지 못했다. 아내가 의식을 잃고 피안(彼岸)은 넘다들며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 시간에 나는 회사에 있었다. 막내 처제와 두 아이가 수술실 밖에서 가슴을 졸이며 긴 시간 수술 과정을 지켜봤다.  그렇다고 회사가 내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회사도 주인이 바뀌고 나니 머물곳이 못됐다.

내가 지난 97년 쓰러져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아내는 병원에서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응급실 침대 옆에서 엎드려 밤을 지샜다. 종아리에 달걀만한 혹이 생겼지만 아내는 당시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아내는 지금도 수술 당시의 서운함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혼수상태일 때 한 숨도 자지 않고 당신 곁을 지켰는데 내가 의식을 잃고 생사를 오갈 때 당신은 어디 있었어요”

  그 뿐만이 아니다. 길상암에서 요양할 때도 아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초보자의 절 생활은 힘들었다. 먹고 자는 일부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절집의 법도를 따르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을 걱정하자 당시 명진 스님이 ‘나를 절에 남겨놓고 집에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아내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스러워 여름 한 철을 길상암에서 같이 지냈다.

  아내의 원망을 들을 때마나 나는 죄진 사람처럼 말문이 막힌다. 어려울 때 나는 아내와 동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난한 집안 5남매 중 맏이한테 시집해 고생바가지를 뒤집어 쓰고 살았다. 나는 아내 가슴에 멍애와 한만 안겨 준 셈이다. 마음 편하게 환하게 웃으며 산 날은 노루 꼬리처럼 짧았다.

  아내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언제쯤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아내는 대 수술을 받고 3개월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사람 고생하고, 병원비 들고. 집안 살림은 살림대로 엉망이었다. 가정의 중추가 병원에 누워 있으니 집안이 제대로 굴러 갈리 없었다.

집안 살림은 얽힌 실타래 처럼 뒤죽박죽이었다. 큰 아이는 아내 병간호하느라 다니던 대학교를 한 학기를 쉬어야 했다. 작은 아이는 큰 애와 가사를 분담해 집안 살림을 담당했다.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아내가 힘들 때 나는 무심한 방관자였다.

요즘 나는 주위에 이런 말을 한다.
“남편이 아프면 집안이 굴러간다. 그러나 아내가 아프면 집안의 기능이 정지되고 살림은 엉망이다. 아내 건강을 최우선해 챙겨라. “이 말을 진심이다. 가슴 아린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신앙고백 하듯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든 일에 미덥지 못한 남편이다. 덧없이 놓쳐버린 아픈 세월의 상처를 바느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깜냥이 모자란다. 세상에시 진실로 나를 생각하는 아내에 대해 나는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최근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20대는 서로 사랑으로 살고, 30대는 정신 없이 살고, 40대는 미워하며 살고, 50대는 서로 불쌍해서 살고, 60대는 감사하며 살다가, 70대는 서로 등을 긁어 주며 산다’는 것이다

만약 이 말대로라면 지금은 서로 불쌍해하고, 더 세월이 흐르면 서로 감사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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