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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78>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2. 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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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S티켓을 잡아라.”


재계에 내려진 지상최대의 명령이었다. 한국통신은 이미 사업권을 받기로 해 느긋했다. 승자의 여유였다.


남은 티켓은 2장. 통신장비제조업체군과 통신장비 비(非)제조업체군에서 각 1장씩의 사업권을 놓고 재계의 합종연횡은 절정에 달했다.


정보통신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견기업들에 대한 기준을 발표했다.

그 기준에 따르면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대한 법률’ 14조 규정에 의한 대규모 기업집단을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기본법’ 2조에 따른 업체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들 두 범주에 들지 않은 업체는 중견기업으로 분류했다.

정통부는 또 통신장비제조업체란 ‘국설교환기와 이동통신시스템 등 주요 통신장비를 제조하는 업체’를 말하고 단말기나 다중화장치, 과금장치, 광케이블 제조업체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PCS티켓 1장이 걸린 통신장비제조업체군은 말그대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이었다. 처음에는 LG그룹과 현대와 삼성의 컨소시엄, 대우그룹의 3자 대결구도였다. 하지만 대우그룹이 자체 PCS사업권 도전을 포기해 경쟁구도는 LG그룹과 삼성-현대 컨소시엄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당시 PCS사업과 관련해 빅4중에서 가장 러브콜을 많이 받은 기업은 LG그룹이다.

삼성과 대우 등이 LG그룹에 제휴를 제안했으나 LG그룹은 이를 거부했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받았던 정장호 LG정보통신사장(LG텔레콤사장. 부회장.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회장 역임.현 마루홀딩스 회장)의 증언.

“남궁 석 삼성데이타시스템 사장(정통부 장관. 16대 국회의원. 국회사무총장 역임. 작고)이 그런 제안을 해 왔습니다. LG와 삼성이 컨소시업을 구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아무리 PCS사업이 황금알을 낳은 거위라고 해도 재벌들이 지켜야 할 금지선(禁止線)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장 사장의 계속된 증언.

“우선 도덕적으로 말이 안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벌기업끼리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이 떳떳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재벌기업끼리 제휴해서 돈되는 사업권을 따겠다고 하면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습니까. 그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 아니겠습니까”


정 사장과 남궁 사장은 고려대학교 동문이었다. 정 사장이 선배고, 남궁 사장이 후배였다. 나이는 남궁 사장이 3살 위였다. 그것은 남궁사장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남궁 사장은 처음에 연세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군 제대후 고려대 경영학과로 편입해서 졸업했다. 그는 1975년에 삼성전자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일하다가 82년 회사를 그만두고 도미, 미국 일리노이대와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86년에 현대전자 부사장으로 스카웃됐다. 그러다가 다시 삼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양 그룹을 대표하는 정보통신분야 간판이었다. 정 사장은 경영학과를 졸업한 공인회계사로 78년 금성통신이사를 거쳐 90년부터 정보통신을 이끌어왔다. 그는 베트남 루마니아 중국 등에 전자교환기 수출의 주역이기도 하다. 남 사장은 삼성전자 부사장과 한국PC통신 사장, 한국데이터통신사장 등을 지냈고 삼성의 정보인프라구축을 앞장서 지휘해왔다.


정 사장의 말.

“남궁 사장이 학교는 후배여도 나이가 위여서 서로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그와 하바드대학 최고경영자 과정도 같이 다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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