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79>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2. 23. 17:08

본문



대우그룹은 변규칠 그룹회장실 사장(LG상사 회장. LG텔레콤 회장 역임)을 통해 LG그룹에 대연합을 제안했다. 구본무 LG그룹회장은 대우측의 이런 제안에 대해 정장호 사장에게 수용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 사장의 회고.

“대우의 제안은 그룹 회장실로 왔어요. 저한테는 직접 그런 제안이 없었어요. 구 회장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며 저한테 의견을 묻더군요. 저는 대우그룹의 제안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 사장은 재벌기업간의 컨소시엄구성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삼성과의 제휴 제안도 그런 이유로 거절했다. 대우는 기술력이 없고 통신사업경험도 없었다. 대우는 수출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당연히 기업문화가 제조업체인 LG그룹과는 달랐다. 따라서 대우그룹과 대연합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정 사장의 판단이었다.

정 사장의 계속된 증언.

“우리가 무역을 할 것도 아닌데 수출기업과 무슨 컨소시엄이냐며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그랬더니 구 회장이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삼성과 현대의 제휴를 보고 내심 ‘아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가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겠다는데 랭킹 1위와 2위를 다투는 재벌간 ‘적과의 동침’을 했다는 게 정책당국이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


LG그룹은 처음 통신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헌조 LG전자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여기에 LG전자와 LG정보통신, LG산전, LG-EDS시스템 등 4개사 관련 인력을 동원했다.

LG그룹은 PCS사업 추진을 위해 6월말 전 한국통신사업개발단장인 유완영 박사(오리온전기 사장. 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 역임)를 LG전자 전무로 영입했다.


그러다가 구 회장이 LG정보통신사장인 정사장에게 PCS사업을 총괄하라고 지시했다.

정 사장은 구 회장을 만나 “ PCS업무 전반에 관한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다. 보기에 따라 괘씸죄에 해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 회장은 정 사장의 말에 두말없이 “그렇게 하라”며 모든 권한을 넘겨 주었다.


정 사장은 그룹내에서 100여명의 인력으로 추진팀을 구성했다.

사무실은 서울 방배동에 별도로 마련해 그곳에서 사업계획서 작성작업을 시작했다.

정 사장은 기술과 자금 등 업무를 총괄할 사람으로 인하대학교 장휘용교수(경제학)를 영입했다. 장 교수는 대우출신으로 LG로 자리를 옮겨 회장실 이사로 일하다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LG근무시 정 사장과 LG홈쇼핑사업권을 따기 위해 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 이 때 그의 사업계획서 작성 능력이 뛰어난 점을 정 사장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 사장은 장 교수에게 ‘과거 성공사례도 있고 하니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고 장 교수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기술분야는 기술사인 안병욱LG정보통신이사(LG텔레콤부사장. 데이콤부사장 역임)이 책임을 맡았다.


삼성-현대컨소시엄도 뒷짐지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은 4월2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컨소시엄 참여 주주대표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PCS연합컨소시엄 공식 출범식 행사와 함께 주주 계약 조인식을 가졌다.


두 그룹은 출범식에서 신규 PCS서비스를 담당할 회사의 이름을 '에버넷'으로 정하고 7월까지 법인설립 및 2천억원 규모의 초기자본금 출연을 매듭짓기로 했다.

에버넷은 양 그룹의 어느쪽 계열에도 편입되지 않도록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최고경영인의 외부영입, 사외이사제 도입 등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버넷은 대기업 2개사와 중견기업 15개사, 중소기업 1백30개사 등 총 1백47개주주사로 구성했다. LG그룹의 100개보다 절반 가량이 많았다. 15개 중견기업은 ㈜대한전선, 아남산업㈜, 태일정밀㈜, ㈜대륭정밀, 청호컴퓨터㈜, 한국종합기술금융㈜, 단암산업㈜, 삼립산업㈜, 신일건업㈜, 동아전기㈜, 대성정밀㈜, 한국타이어제조㈜, ㈜청구, ㈜성안, ㈜남성 등이다.


에버넷의 자본금은 설립 첫해에 2천억원으로 시작해 98년까지 총 5천억원으로 확대하고 2002년까지 1조5천5백억원의 설비투자를 단행, 2002년에 1조3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었다.


이날 행사는 인기 MC 한선교씨 (현 18대 국회의원)가 사회를 맡고 그룹 ‘코리아나’가 축가를 부르는 등 대외에 세(勢)를 과시했다.

현대와 삼성은 당초 연합컨소시엄내의 대주주 지분율을 각각 20%씩 두 회사의 지분 합계를 40%로 유지키로 했으나 이날 출정식에서 두회사의 지분합계를 33.3% 이내로 줄이기로 했다.


삼성그룹의 남궁 사장은 “기존의 개별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중견.중소기업들이 각사별로 70여개에 달했으며 이를 거의 대부분 수용키로 했기 때문에 중견.중소기업들에게 더많은 지분을 할당하기 위해 대주주 지분을 낮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측 PCS책임자였던 홍성원박사((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KAIST 서울분원장,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회장 역임)의 증언.

“삼성과 컨소시엄 구성 후 양팀이 공동작업을 했어요. 하지만 삼성이 사업계획서 작성 등을 주도했습니다. ”


‘에버넷’이란 작명을 놓고 삼성-현대 실무자간에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다. 현대측 실무자들은 삼성그룹 계열의 용인자연농원이 최근 이름을 용인에버랜드로 바꾼 점을 들어 ‘에버넷’에 삼성의 냄새가 짙다는 불만을 내비쳤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작명소에 의뢰해 30여가지 후보 이름을 작성, 이를 놓고 현대쪽 고위관계자가 최종 낙점을 한것”이라고 해명했다.


현대전자의 김주용사장(고려산업개발 사장 역임. 현 한국공학한림원회원)은 “애초 용인에버랜드라는 이름이 있었는지 몰랐으며 대승적 차원에서 지엽적인 문제에는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굳이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박사의 회고.

“당시 그런 내부 반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대수냐고 해서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PCS사업권을 놓고 벌이는 LG그룹과 삼성-현대간의 한판 승부는 ‘총성없는 전쟁’, 바로 그 자체였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