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을 비켜갈 기업은 없었다. 가히 ‘PCS춘추전국시대’라고 할만 했다.
통신장비 비제조업군의 경쟁구도는 기업들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으로 혼전의 연속이었다. 비제조업군에 속한 1만5천여개의 각기 다른 길을 걷는 중견과 중소기업들이 3개의 컨소시업을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컨소시엄 구성에 합의한 기업들이 막판에 이를 뒤집고 파트너를 바꾸기도 했다. 신의나 명분보다는 이익을 위해 ‘동지와의 배신’도 불사했다.
이런 복잡다기(複雜多岐)한 과정을 거쳐 비조조업군의 경쟁은 3자 대결로 압축됐다. 한솔-데이콤 컨소시엄(한솔PCS)과 금호-효성컨소시엄(글로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 그린텔) 등 3파전이었다.
한솔-데이콤 컨소시엄인 한솔PCS에는 3백2개기업이 참가했다.
한솔그룹은 처음 PCS와 국제전화사업 참여를 동시에 검토하다가 1996년 1월 23일 PCS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한솔관계자인 A씨의 증언.
“처음에는 국제전화사업 참여에 무게를 두었어요. PCS사업에 비해 초기투자비용이 적고 투자에 비해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어요. 그러나 정보통신사업을 그룹의 주력업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국제전화 대신 PCS사업에 참여키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나중에 조동만 한솔부회장(현 한솔아이글로보회장)이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현철씨(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의 비자금을 관리해 준 사실이 들러나 ‘사전내락설’이 나돌기도 했어요.”
한솔은 정보통신사업단내에 있던 국제전화사업추진팀을 해체해 PCS추진팀과 통합했다.
여기에 18개 계열사의 전문인력을 추가 추입해 인력을 종전의 53명에서 72명으로 늘렸다.
한솔은 2월17일 정보통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정보통신사업단 공동단장제를 도입키로하고 정용문 한솔기술원 원장(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대표. 한솔PCS사장 역임)을 추가로 정보통신사업단 단장에 선임했다. 정 단장은 기술 및 연구개발부문을 담당하고 지난해 6월부터 정보통신사업단 단장직을 맡아온 구형우 한솔제지사장(한솔그룹부회장. 현 페이퍼코리아 회장)은 기획.관리.자금부문을 전담하기로 했다.
한솔PCS컨소시엄에는 굵직 굵직한 그룹들이 주주로 참여했다. 아남산업과 고합그룹에 이어 한화그룹의 한화전자정보통신이 3월15일 주주로 가세했다. 한화전자정보통신은 LG, 삼성, 대우 등과 함께 국내 교환기사업을 이끌어온 통신기기 제조업체로 PCS용 CDMA방식 시스템을 개발 중이었다. 3월 19일에는 쌍용그룹이 한솔 PCS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한솔은 3월 22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PCS 컨소시엄 출범식을 가졌다.
정용문 단장은 인사말에서 "한솔은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정보통신사업을 선정, 오랜 기간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며 "국내유수의 중견.중소기업이 주주로 참여하는 최상의 컨소시엄을 구축한 만큼 반드시 사업권을 획득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출범식은 한솔PCS사업설명회, 컨소시엄 출범식 및 오찬의 순서로 약 3시간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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