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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65>-환생이야기

암자일기

by 문성 2011. 2. 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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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소양면 청량산 정상에 원등사란 고찰이 있다.

신라 보조 국사가 창건하고 도선 국사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 부처의 화신이라는 진묵대사가 다시 중건했다는 절이다. 보조국사가 나무로 만든 오리를 날려 절터를 잡았다고 해 처음에는 목부암이라고 불렀다. 이후 원등사로 개명했다.

 이 곳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환생 실화가 전한다.

이조 말 고종 때 서예가 이자 문신인 김성근 대감과 관련한 내용이다.
김성근 대감은 철종 13년 문과에 급제해 호남(전라도)관찰사. 이조판서.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지낸 인물이다. 서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도 그의 글씨가 있다. 팔만대장경 문간채 두 번 째 현판인 ‘장경각’이란 글을 그가 호남관찰사 재직시 해인사를 참배하고 남겼다는 것이다.  

이조 말 원등사 스님들이 나한전(사진) 공사를 하다가 석함을 발견해 그 안을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글이 나왔다.

늘 원암산에서 머물던 이 몸
그림자 한양에 떨어져 재상 몸 되었네
내 떠난 지 50년이면 호남의 관찰사 되리니
갑오 이전에는 해봉 스님이었다가
갑오 이후에는 김성근이구려.

  갑오년(1834년) 5월 13일 원등암에 살던 승려 해봉은 향로와 사용하던 다기, 촛대 등과 함께 이런 글을 써서 16간 석함에 넣고 열반에 들었다.

  자신의 전생과 관련한 일을 글로 적어 석함에 넣었던 것이다. 이를 발견한 스님들은 놀랍기만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 지금 관찰사가 바로 김성근 대감 아닌가”

  스님들은 이런 사실을 당시 관찰사이던 김성근에게 알렸다.

  “뭐라고. 내가 전생에 원등암의 스님이었다고. 거참 묘한 일이군. 어서 그곳으로 가 보자”

  김성근은 실제 해봉 스님이 열반에 든 이듬해인 1835년 서울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원등암에 도착한 관찰사가 일행들과 함께 나한전으로 달려가 석함을 열고 글귀를 직접 확인했다. 석함을 열자 그속에서 오색무지개가 하늘로 퍼졌다.

 이를 본 김 관찰사는 자신의 전생을 믿게 됐다. 그리고 원등암 나한전 증건에 온갖 지원을 다했다. 나중에는 상량문도 지었다.

 그는 자신의 호도 해봉 스님의 ‘해’자와 선비의 ‘사’를 합쳐 ‘해사’로 지었다.

  그는 불교에 심취해 아침 저녁으로 염불을 했으며 3.1독립운동 33인중의 한 분인 백용성 스님과도 친교가 두터웠다고 한다. 용성스님의 제자가 설법제일이라는 동산스님이고 동산스님의 제자가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로 유명한 선승 성철스님이다.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지만, 인생사에 이같은 불가사의한 일이 실재함을 볼 때 전생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해인사 길상암에서 명진 큰스님 상좌가 갖고 있던 환생 주인공인 김성근 대감의 사진을 손에 넣었다.  김성근 대감은 사모관대를 한 관복차림으로 네모진 흉배를 가슴에 달고 두명의 다른 고관들과 서 있었다.

한마디로 전생과 후생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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