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했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30에 확고히 섰고(而立), 40에 의혹되지 않고(不惑), 50에 천명을 알았고(知命), 60에 귀가 순해졌고(耳順), 70에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인터넷이 오는 29일로 탄생 40년, 인간으로 치면 불혹을 맞는다. 1969년 미국에서 국방망인 아르파넷(ARPAnet) 등장한 것이 인터넷의 시초다.
한국에서는 언제 인터넷이 등장했을까. 그 주역은 누구인가. 바로 전길남 박사(사진)이다.
지난 82년 5월 15일. 오월의 신록이 눈부신 가운데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KIET,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길남 박사(당시 책임연구원)은 전화선을 이용해 연구소 컴퓨터와 서울대 컴퓨터를 연결하고 있었다. 결과는 성공했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괘거였다. 이것이 한국 인터넷의 효시다.
전 박사는 미국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79년 정부의 해외 과학자 유치정책에 따라 귀국했다.
그는 귀국 3년 만에 이런 성과를 냈다. 이후 그는 86년 미국이 인터넷을 세계에 개방하자 KAIST교수로 재직하면서 90년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용망인 ‘하나’를 구축해 미국의 인터넷망과 연결시켰다.
이것이 한국의 인터넷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됐다. 그는 ‘kr'이란 국가 도매인도 처음 관리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한국 '인터넷 대부' 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학교에서는 내로다 하는 인터넷 CEO를 길러냈다. 오늘날 한국이 인터넷강국이 된 것은 전박사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94년부터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해마다 사용자는 급격히 늘었다. 현재는 전국의 77%인 3500만명이 사용한다. 2009년 ITU ICT 개발지수에서 인터넷 접속가구 비율 1위를 차지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국가도매인인 ‘kr'등록수가 100만개를 넘었다.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이다. 이런 인터넷 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바로 전 박사가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명성이나 실적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아쉬운 점이다.
그의 덕분에 이제 인터넷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인터넷의 얼굴은 두 개다. 정보의 보고인 동시에 악마의 얼굴도 갖고 있다. 선인과 악인, 야누스다. 인터넷 이용자가 늘수록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갈수록 늘어난다. e메일 스팸, 분산서버스거부(DDOS) 공격 및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등과 음란물, 유해사이트 등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8월 30일 AP통신은 인터넷의 이런 현상을 ‘인터넷, 중년의 위기’로 표현한 바 있다. 등장한지 40년이 됐으니 사람으로 치면 중년이다. 우리는 앞으로 인터넷의 순기능을 확대하고 역기능을 막아야 한다. 우선 인터넷 사용자들이 클린콘덴츠를 이용해야 한다. 맑고 깨끗한 인터넷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 크다. 물론 강력한 법적용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나이가 마흔이면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중년의 위기’에 빠진 인터넷을 우리가 어떻게 불혹의 인터넷으로 만들어야 할지 걱정이다. 인터넷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혹의 인터넷을 보면서 '인터넷 대부' 전 박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IT강국 코리이 건설에 앞장섰던 원로 과학자들을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그들의 노고에 늘 감사해야 한다.
공허한 '과학 미래비전' (0) | 2009.11.13 |
---|---|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복안은 뭔가 (0) | 2009.11.05 |
청와대 사람들의 탈선 (0) | 2009.10.21 |
어떤 리더십인가 (0) | 2009.10.20 |
이제 "본 의원..."이란 말은 버리자 (0) | 2009.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