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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길상암 인연

암자일기

by 문성 2011. 4. 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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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추억을 만나면 반갑고도 슬프다.
회한이 깃든 마음속 여행은 다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일이다.

“아니 그 때 그 학생이란 말인가.” 절로 탄성이 터졌다.

댓글을 보는 순간, 법화경에 나오는 경구가 저절로 떠올랐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모든 법이 인연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는 뜻이다.

  내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글을 읽고 느닷없이 눈에 물기가 흘렀다. 그립고 아쉬운 세월의 추억 때문이다. 갈 수 없는 그 시절이 눈물속에 아롱거렸다.

  1997년 여름 내가 해인사 길상암에서 묵을 때 일이다.
한 해전 명진스님의 보살핌아래 길상암에서 여름 한철 요양했던 나는 그 후 시간이 날때마다 길상암을 찾아 요사채 2층에 머물렀다. 길상암은 내 영혼의 휴식처였다.  


다른 요사채에 고3인 학생이 입시공부를 하러 와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밤늦게 까자 불이 켜져 있었다. 첫째 아이도 고등학생이어서 눈여겨 그 학생을 지켜봤다. 새벽늦까지 공부한 날은 아침 공양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 잠에 골아떨어진 듯했다. 몹시 더운날은 웃통을 벗어 던진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대입이 뭐길래 한창 자랄 아이들이 저렇게 밤샘을 해야 하는가?.

  당시 길상암에 이른 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 그 학생은 그들과도 무던하게 지냈다. 간혹 요사채 마루에 함께 앉아 가정사를 주제로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며칠 머물다가 나는 아내와 서울로 돌아왔다.

그 학생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해 가을에 명진스님이 열반에 들었다. 스님과 인연은 짧았지만 추억은 진하게 남아 있다.  그 후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길상암에 내려 갔다. 하지만 그 학생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간혹 아이들 대입시험을 앞두고 공부할 때 아내와 간혹 길상암에서 공부하던 그 학생이야기를 했다.

“그 학생은 원하는 대학에 갔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아마도 이제 결혼해 가정을 이루지 않았을까” 

  바로 그 학생이 내 글을 보고 댓글을 올린 것이다.

그는 그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를 박박깎고 무더운 여름날 방안에서 공부하던 고3 수험생의 모습이 내 뇌리에 각인돼 있다.
그에 대한 기억은 인연의 소중함이다. 그리고 길상암에 대한 추억이다. 그것은 곧 명진스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 학생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도 고3이 아닌 어엿한 청년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됐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고3 수험생이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인가.  시절 인연이 그립다.  갈수 없기에 더 애틋한 시절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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