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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

이현덕 칼럼

by 문성 2009. 11. 1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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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입밖으로 나오면 주워 담기 어렵다.

문자와는 천지차이다. 글은 잘못 쓰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된다.
  하지만 말은 바로 잡기가 쉽지 않다.  

 말한 사람의 의도와 달리 사람에 따라 제 각기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말이 또 다른 말을 잉태하는 이유다.  그러니 한 번 한 말을 고치거나 수정하려면 얼마나 궁색한 변명을 많이 해야 하는지 겪어 본 사람은 잘 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사진은 청와대 홈페이지.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기자 회견 내용이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한미FTA(자유무역협정)와 관련, "자동차가 문제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발언이 자동차 부분에 대한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미 의회와 자동차업계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들어보겠다는 의미"라며 "상황에 따라 추가 협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협상 여부에 대해선 "재협상은 가능하지 않다"면서 "기존 협정문을 고치는 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전했다.


경위야 어쨌건 모양새가 좀 우습게 됐다. 듣는 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앞서 대통령이 한 말은 뒤에 통상교섭본부장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인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기자 회견장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가능성은 높았다. 그렇다면 사전에 참모들이 이에 대한 매끄러운 답변자료를 이 대통령에게 주어 혼선을 빚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해야 옳다.

 만약 미국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재협상을 강력하게 요구해 올 경우 이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우리측 대응 논리가 궁색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말을 잘못해 구설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에는 연설을 담당하는 팀이 있다.
청와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탓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대통령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행위다. 그 말을 통해 리더십을 유지하고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전임 대통령 가운데 노무현 전대통령은 달변가이면서도 논리적이었다. 솔직하고 서민적이었다. 그러나 직선적인 성격탓으로 거칠고 다듬지 못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오르내렸다. 나중에는 “말을 좀 줄이시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등이 회자되는 말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말솜씨는 자타가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성격처럼 꼼꼼해 말을 많이 하면서도 매우 논리적이다. 표현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고 유머감각도 남달랐다고 한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말로 인해 구설에 가장 많이 올랐다. 그가 말을 거침없이 했지만 논리가 빈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연히 말 실수가 많았다. 더욱이 사투리로 인해 화젯거리를 남겼다.

“경제”를 “겡제”로 발음하는가 하면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일갈한 것들이다. 일본에 대해 일갈한 것에 듣는 국민의 속은 시원했느나 나중에 댓가를 치러야 했다.


 대통령의 말은 달변이나 다변보다는 절제와 신중해야 한다. 말을 가볍게 해 논란에 휩싸인다면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


  대통령의 말은 일반인과 다르다. 대통령의 말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 대통령의 한마디 말이 얼마나무거운가.  자칫하면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대통령의 말은 언제 어디서나 엄중하고 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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