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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법왕사 '약사여래불 점안식' 봉행

사찰기행

by 문성 2014. 5. 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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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 칠성산 법왕사(주지 정암)518일 오전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 여래불 점안식을 봉행했다.

점안식에는 법왕사 주지인 정암스님을 비롯, 정념 월정사 주지, 청우 등명낙사가 주지, 최홍집 새누리당 강원도지사 후보, 권성동 국회의원  사부대중 300여명이 참석했다.

 

 

 

 

 

 

 

 

 

약사유리광여래불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의 묘과를 증득하게 한다는 것이다. 

약사여래불은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약사십이대원(藥師十二大願)이며, 그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또 한량없는 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는 부처님이다.

  약사여래불 점안식은 점안 예불과 점안, 기념식 순으로 2시간여 진행했다.

약사여래불을 법왕사에 모신게 된 동기는 주지인 정암 스님에게 한  "사바세계 중생의 마음과 육신의 병고를 고치도록  하라"는 약사여래불의 현몽때문이다.

  정암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2010년 법왕사에 산지 40년을 맞아 그해 102일 법왕사 중창불사 회향식을 끝으로 불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지난해 어느 날 밤 꿈에 약사여래불이 두 번이나 나타나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이 병든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구하러면 나를 이곳에 모셔야 한다는 계시를 받고 불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암 스님은 이런 현몽을 꿈 뒤 서울 보현정사 김연등 보살에게 이야기 했더니 이는 부처님의 큰 계시다. 불사 비용의 절반을 부담할테니 불사를 진행하시라고 해 불사를 진행했는데 이 어려운 시국에도 신도들의 참여로 불사를 원만하게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청우 등명낙사사 주지와 문중을 대표해 재곤 전 대흥사 주지의 격려사, 정념 월정사 주지의 법문이 있었다.

  문중을 대표한 재곤 스님은 정암스님은 은사인 청우스님이 1980년대 전남 대흥사 주지를 맡으라고 했지만 한 마디로 거절하고 이곳 칠성산에 와서 작은 암자였던 칠성암 주지로 와서 지금의 법왕사 대가람을 조성했다면서 그동안 조계종 종회의원, 총무원장 비서실장, 재심 호계위원 등 조계종단의 요직을 역임한 큰 스님이라고 말했다.

  법왕사 입구 종무소 앞에 모신 약여래불은 높이 10m의 화감암으로 조성했다. 왼손에는 약병을 들고 있다.

법왕사(사진)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말사다.

칠성암으로 불리던 이 절은 정암스님의 은사인 청우 대선사가 주석했다그러다가 1970년 정암스님이 주지로 와서 45년을 머물면서 부처님 법을 설파해 왔다. 정암 스님은 이곳에 오기 전 전남 강진 백련사 주지를 역임했다.  부처님의 정법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사찰명을 칠성암에서 '법왕사'로 변경했다.

  법왕사는 대웅전과 천불전, 칠불전, 나한전, 세심선원 등과 미륵보살, 초전법륜상에 이어 이번에 약사여래불까지 모셨다.  법왕사는 특히 칠성기도가 영험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정암 스님은 법당 불사 중 난간에서 떨어져 6개월간 하반신이 마비되는 고통속에서도 불사를 멈추지 않았다. 

  법왕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사명대사 유정의 사리비 등 유물등이 모셔져 있다.

법왕사 입구 주차장 오른쪽에는 20024월 신도들이 정암스님의 공덕을 기린 '정암대화상중창공덕비'가 우뚝 서 있다.  정면 정원석 위에 5층 석탑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두산백과에 나타난 법왕사의 창건 유래는 다음과 같다.

  634(신라 선덕여왕 3)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신라 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를 연 범일(梵日, 810889)이 이곳에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범일이 굴산사를 창건한 뒤에 그의 제자들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나라에서 불교를 탄압하자 폐허가 되었으며, 인근 마을 부녀자들이 칠성기도를 올리는 곳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1896년 진사 정은(鄭殷)이 절터에 독서재(讀書齋)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정은이 떠나자 마을사람들이 법당으로 바꾸고 절 이름을 칠성암(七星庵)으로 고쳤다. 1946년에는 정주교(鄭胄敎)라는 거사가 임야 36정보를 시주하여 당시 주지로 있던 청우(聽雨) 스님이 대웅전 등을 지으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1950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며, 1967년과 1968년 각각 1동씩 요사를 지었다.

  1970년 혜운(惠雲)이 주지로 부임한 뒤 청우당과 범종각·삼성각을 짓는 등 불사를 꾸준히 진행하였고, 2000115일 대웅전을 새로 지어 내부에 아미타불과 노사나불·약사불 등 칠불을 모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천불전·반야원·백운선원·삼성각·종각 등이 있고, 유물로는 비석과 부도가 전한다. 경내에 있는 기적비(紀蹟碑)와 운곡선사비는 1930년에 정주교가 세운 것이고, 절 아래쪽에 있는 팔도도원장겸총섭사이선사비(八道都院長兼摠攝舍伊禪師碑)는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의 사리비이다. 유일(有一)과 혜장(惠藏) 등이 세운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밖에 태율(兌律)과 완파(翫波)의 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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