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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자녀들의 정치권 현주소

전직 대통령 이야기

by 문성 2009. 8. 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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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8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임자들이다.  청와대는 권력의 집합체이자 결정체이다. 그곳에 권위와 권력이 있다. 

 
정치(政治)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라고 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다.

  그런데 정치판을 잘 아는 사람들은 정치란 고상한 것이 아니라 더럽고 치사하며 야비하기까지 한 행위라고 단언했다.
권력을 쥐기 위해 원칙도, 소신도 버리고 이합집산을 밥먹듯 한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고 한다. 우리 정치사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직대통령 자녀중 정치인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김홍걸, 홍업 전 의원 등이다. 모르긴 해도 이들의 지향점은 대권고지에 오르는 일일 것이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는 처음엔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스텐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1년 박준규 국회의장실 국제담당 비서관을 지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노전대통령의 고향인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삼정부 시절 노 전대통령이 구속되는 바람에 정치를 포기했다. 그는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앞으로 정치를 재개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두환, 노무현 전대통령으자녀들은 아직 정치와 무관한 행보다.

 박근혜 전 대표는 1998년에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정치 일선에 나섰다. 처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실제 그는 어린 나이에  부친 옆에서 '제왕학'을 체험했다.
 200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으나 대선 전에 한나라당에 다시 복귀했다. 2002년 5월 12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했다. 이런 점때문에 본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대북특사설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는 현 정치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다. 말을 가볍게 해 구설에 오른적이 거의 없고 부패에 연루된 일도 없다. 한 때  '수첩 공주'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이것도 그의 평소 신중한 태도의 단면이다. 특히 선거 때마다 승리해 '선거의 여왕' 이라고 불린다.
역대 선거전에서 무패다. 그를 향해 독설을 퍼붙던  당내 의원들도 선거철만 되면 그에게 매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원칙주의자다. 산전수전 다겪은 노회한 정객들이  그에게 밀리는 것도 원칙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그런 원칙이 박근혜 힘의 원천이다. 그의 말은 짧다.  필요한 말만 한다.  정치의 고비마다 핵심을 찌르는 단문으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전자공학도 답게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지지자들과 교류하고 있다. 저서가 많다.  2007년 7월에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서전을 펴냈다. 그가 차기에 대통령이 된다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부녀 대통령’이란 기록을 남긴다. 그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많은 이가 모성의 정치를 할 것이란 기대가 많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김현쳘 씨는 우여곡절을 겪고 현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재임시절 아들로 인해 국민에게 사과담화문을 발표했다. 아들 때문에 칼국수를 먹으며 추진했던 개혁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아들이 불법정치 자금을받는 바람에 청렴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구겨졌다. 결국 김 대통령은 재임중에 아들을 구속했다. 


 현철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장.차관 인사에 개입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2004년에도 한솔그룹 조동만 전 부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시절 사면 복권됐지만 17,18대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18대 때는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를 모색했으니 여론악화와 지지도가 낮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당내의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정계 복귀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도 정치인을 길을 걷고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두 아들도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뛰어 들었다. 지금은  전의원의 신분이다. 장남 홍일 씨는 아버지가 대통령인데 출마한다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입문해  3선 의원에 당선됐다. 15대 총선 당시 전무후무한 부자(父子) 국회의원 탄생이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나라종금로비 사건에 연루, 집행유예 3년의 형이 확정돼 2006년 9월 의원직을 잃었다. 둘째인 홍업씨와 막내 홍걸 씨도 부친의 재임중  알선수재 배임 등의 협의로 구속됐다. 홍업 씨는 지난 2007년 전남 무안ㆍ신안 재보선에서 대물림정치라는 비난속에서도 당선해 국회에 진출했다. 
18대 때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 고배를 마셨다 .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자신한 김대통령도 세 아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되면서 레임덕을 앞당겼다. 홍일 씨는 1980년에 김대중 내란음모협의로 두차레나 옥고를 치러 ,이후 육체적 장애를 겪고 있다. 둘째 홍걸 씨는 앞으로 정치행보를 계속할지 알 수 없다. 전직대통령 자녀들의 정치권 현주소다.  과연 한국에서도 2세 대통령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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