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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그시작과 끝<9>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0. 6. 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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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오후 9박 10일간의 아·태 순방 및 아태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 참석을 마치고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김 대통령은 귀국 전인 17일 호주 시드니에서 앞으로 국정목표를 세계화에 두겠다는 이른바 '세계화 장기구상'을 전격 발표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김 대통령은 귀국 즉시 박관용 비서실장(사진)으로부터 '전방위 보고'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박 실장에게 '세계화 구상'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날 상황을 박 실장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번에 해외에 나가서 많이 배워 왔어요.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세계화를 말하더구먼."

 

 "그런데 각하, 지금 정부조직으로는 세계화를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세계화 구상에 적합한 정부조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김 대통령이 박 실장을 향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김 대통령은 당시 정부조직 개편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 실장이 아닌가. 그런데 왜 다시 조직개편을 거론하느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박 실장은 자꾸 정부조직을 개편하자고 하던데 뭘 어떻게 개편하자는 말이오? 무슨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박 실장은 순간 대통령의 심경에 변화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예. 제가 다 준비해 놓은 안이 있습니다"

 

 "준비를 해 놓다니? 무엇을 다 준비를 했다는 거요"

 

 "각하. 정부조직을 획기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세계화 구상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극비리에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어디 그 안을 좀 봅시다."

 

 박 실장은 김 대통령에게 철통보안 속에 만든 정부 조직개편안의 골격을 간략히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박 실장이 보고한 정부조직개편안을 들고 관저로 퇴근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대통령은 작은 일까지 시시콜콜 챙기는 업무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범해 원칙만 정해 주고 나머지는 실무자에게 일을 맡겼다. 이랬던 김 대통령이 평소답지 않게 정부조직개편안을 가지고 관저로 퇴근하는 것이었다.

 

 박 실장의 회고.

 

 "대통령이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기 위해 서류를 가지고 퇴근했는데 누구한테 보였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그로부터 1, 2일 후.

 

 김 대통령이 박 실장을 불러 개편안을 넘겨 주며 말했다.

 

 "박 실장이 만든 안대로 정부조직을 개편합시다."

 

 "알겠습니다. 그 절차와 형식은 제가 별도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이날 상황에 대한 박 실장의 회고.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뭐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이 청와대 비서실장 재임 시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상 최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 조직개편은 문민정부 세 번 째였다. 이 안에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하는 것이 들었다. 세 번 째 정부조직개편안은 박 실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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