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정부조직개편을 지휘한 박관용 대통령비서 실장의 계속되는 증언.
“이들에게 철저한 보안을 강조했어요. 만약 외부로 이 사실이 새어 나가면 사표를 받겠다고 했어요. 사표를 미리 받았어요.”
작업은 보안 유지를 위해 주로 비서실장 공관에서 했다. 실장공관 2층 작은 회의실에서 일에 따라 매일 또는 며칠에 한 번 씩 모였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여름 쯤 개편안을 완성했다.
박 실장의 회고.
“정보통신부 확대개편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확신했어요. 내가 그 분야를 잘 모르지만 다가올 정보화시대에 대비하려면 부처별로 나눠 있는 정보통신관련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했어요. 일부는 내가 윤동윤 장관과 친구라서 치우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나나 윤장관이나 일에 관해서는 원칙주의자입니다”
개편 작업은 끝냈으나 김 대통령의 입장에 변화가 없어 박 실장은 대통령에게 말도 못하고 처지가 난감했다.
이런 가운데 김대통령은 그해 10월 12일 한국경제신문 창간30주년 특별회견에서 “부처간 통폐합은 현 시점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일이 더 꼬이는 듯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에 조직개편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각 부처는 환호했다. 이제 ‘조직개편은 물건너 갔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정부조직개편설은 더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당장 행정쇄신위원들이 반발했다. 김광웅 위원(서울대행정대학원장. 중앙인사위원장역임. 현서울대명예교수)은 이런 위원회라면 사퇴하겠다고 나섰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바로 상황에서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김대통령이 11월 아.태순방 중 깜짝 ‘세계화 구상’을 밝히고 박 실장이 과감한 정부조직개편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 신통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동안 반대입장이던 김대통령이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박실장은 박동서 위원장을 서울시청 앞 프라자 호텔로 조용히 불러냈다. 22층 스카이라운지 구석진 곳에 앉아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합니다. 드디어 대통령의 승낙을 받았습니다”
박 위원장이 깜짝 놀라며 반색을 했다.
“아이구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손질을 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박위원장이 행정쇄신위원회에 만든 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확정하는 형식으로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박 실장은 박위원장이나 위원들이 서운하지 않게 이해를 구했다.
“대통령 보고일자는 제가 정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94년 11월 29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박 위원장은 김 대통령과 독대해 이 안을 확정 지었다.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박위원장이 대통령에게 현안업무를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누구도 조직개편안이란 것은 짐작조차 못했다. 이날 청와대 발표는 1단 기사로 처리됐다.
박 실장은 황영하 총무처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청와대에서 만든 정부조직개편안을 넘겨주면서 성안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황 장관의 회고.
“조직개편 성안 작업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습니다.”
이 작업에는 총무처 문동후 조직국장(2002월드컴 사무총장 역임. 현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 사무총장)과 김영호 조직기획과 과장(충북 부지사. 행정안전부 제1차관 역임. 현 법무법인 세종 고문) 등이 참여했다.
김 과장의 말.
“장관의 지시를 받아 실무작업을 했습니다. 보안 유지를 위해 퇴근 후 올림피아, 뉴서울, 스위스그랜드 호텔 등을 돌았습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호텔에서 일하느라 집에는 새벽에 들어가 옷만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박관용 비서실장 공관으로 가 박실장 주재로 관계자 회의를 했습니다. 사무관 2명이 이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박실장은 정부조직개편안 발표일을 12월 3일로 잡았다. 국회에서 그해 예산안 통과 시한이 2일 이었던 것이다.
청와대는 발표할 정부조직개편안 자료도 3일 새벽에 인쇄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보안을 유지했다.
94년 12월 정부조직개편안은 박 실장이 적극 나서지 않았으면 개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3차 조직개편은 박 실장의 ‘걸작’이고 그 안이 ‘신통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조직개편화 관련한 뒷이야기. 이름 밝히기를 끼린 문민정부 고위 인사의 증언.
“당초 개편안에는 총무처와 내무부도 폐지 부서에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총무처는 최창윤 장관(청와대 정무수석. 공보처장관. 김대통령후보 비서실장역임)이 막판에 개입해 뒤집었고 내무부는 경찰청 때문에 그대로 놔주었습니다”
정부조직개편의 막전막후는 이처럼 드라마틱한 반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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