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당시 현장을 밝히는 등불이다.
그래서 기록은 무섭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거대 담론을 앞세워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위원장과 상임위원 1명씩을 임명했다. 최시중 위원장과 형태근 상임위원이다. 한나라당은 송도균 전SBS사장을, 통합민주당은 이경자 경희대 교수와 이병기 서울대 교수를 상임위원으로 추천했다.
3월 26일 방통위 전체 회의가 열렸다. 4명의 상임위원중 1명을 부위원장으로 호선하는데 처음부터 논쟁이 벌어졌다. 야야가 서로 자신들이 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야당측 위원들은 "정책의 균형과 견제를 위해 야당측이 부위원장을 맡는게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 여당측은 " 부위원장은 위원장 부재시 국무회의 참석 등의 업무를 대행하는데 그동안 관례를 보면 여당측 부위원장이 참석했다"며 맞섰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최시중 위원장이 중재안을 냈다.
"3년의 임기를 반으로 나누어 부위원장을 맡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안은 통과됐고 전반기는 송도균 위원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회의록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부위원장직을 둘러싼 논쟁은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해 5월 13일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부위원장 선임과 관련, 여야는 또 한차례 격론을 벌었다. 야당은 방통위 회의록을 제출받아 "송 부위원장 선임은 무료"라며 공세를 폈고 여당은 이를 옹호해 한동안 갈등을 겪었다.
올 2월에는 야당이 자신들이 추천한 상임위원들이 제대로 정책을 견제하지 못한다며 "사퇴론"을 들고 나왔다. 민주당은 그달 24일 "방통위가 KBS 사장 추천 등 방송장악에 앞장 서는 데도 아루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면서 "이들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당의 주장을 야당몫의 상임위원들이 강력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우여곡절의 세월이 흘러 지난 23일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후반 부위원장으로 야당측이 추천한 이경자 상임위원을 선임했다. 그는 9월 26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야당 추천 인사가 부위원장을 맡으면 사납던 폭풍우가 가라앉듯 만사형통인가.
천만의 말이다. 방통위는 대통령직속기구지만 상임위원 구성은 정치적 배분이다.
하지만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볍률에 따르면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은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의 독립성, 업무의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상임위원들은 공직을 맡은 이상 법을 지켜야 한다. 자신을 추천한 정당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변해서는 안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의 후견인인 정당의 입김에서 벗어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상임위원들이 법대로만 한다면 걱정할 게 없다.
과거 방송위원회는 상임위원 5명, 비상임 4명 등 9명이 합의제로 운영했다. 그랬더니 여야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정치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 많아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었다.
방통위도 독임제가 아니라 합의제 기구다. 여기에 방송위처럼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면 그럴 때마 방통위는 정쟁의 파고에 시달려야 한다. 따라서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정책의 통합과 효율성. 신속성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상임위원회의 일은 기록으로 남고 그것은 상임위원의 공과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여야를 떠나 '부위원장은 나눠먹기 자리'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국민을 쳐다보면서 미래 융합 정책을 펴야 한다 .
상임위원들이 해야할 염블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층이나 정치권에 잘 보이려는 잿밥에만 눈독을 들인다면 고달픈 것은 서민들 뿐이고 방송과 통신의 미래는 비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