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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과 통신요금 논쟁

이현덕 칼럼

by 문성 2009. 9. 2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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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공약은 다수의 이해와 직결될 때 주목받는다.

이동통신요금도 그중의 하나다.  모방송사에서 2007년 ‘쩐의 전쟁’이란 16부작 드라마를 제작한 적이 있다. 시청율이 35%에 달했다. 내용은 사채업을 다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동통신비에 대한 가계 부담을 의식해 지난 2007년 대선 공약으로 이동 통신비 20% 인하를 약속했다. 통신비라는 전(錢)의 대결에 불을 붙인 것이다.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면서 요금책정이 과다하다는 판단에서다. IT강국에서 이동전화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국민에게 먹힐 공약이다.

 그러나 선가가 끝난 뒤 인수위는 2008년 2월 대선 공약사항을 슬그머니 거둬 들였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인위적 요금 인하는 없으며 인하하더라도 사업자에 맡겨 자율적 인하를 단계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속사정은 반시장적 경제 정책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이통업계의 반발이 거세자 한 발 물러 선것이다. 공약과  실천은 천지만큼이나 차이가 많은 것이다.



 올들어 지난 7월 미디어법을 처리한 한나라당이 서민살리기 법안이라며 통신요금 인하 문제를 들고 나왔다. 다분히 정략적인 접근이었다. 국민의 가려운 곳을 끍어 지지도를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이통사업자들에게 발등의 불이었다.
 

 지난 8월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국가별 이동전화 요금을 발표하면서 이통요금 논쟁 2라운드가 시작됐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이 "통신요금을 내리라"며 들고 일어났다.

 

주무부서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총대를 맬 수 밖에 없었다. 그는 2개월여의 고심끝에 지난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나와 “추석 이전에 요금인하 방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사흘 후인 지난 25일 방통위는 통신요금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크게 가입비 인하와 장기 가입자에 대한 기본료 인하, 1초당 과금제 도입, 무선데이터 요금 인하 등 4가지다. 이를 통해 1인당 통신비 부담을 월 7730원, 가계통신비 부담을 월 7~8% 낮추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성과도 컸다.

방통위로선 이미 쟁점이 된 이통요금 문제를 미루거나 피해 갈 수 없는 처지였다.


 당장 방통위 앞에는 정국을 꽉 막히게 한 미디어법 뇌관이 놓여있다. 10월초부터 국회 국정감사와 상임위가 열리면 미디어법과 통신요금 문제는 핵심 쟁점으로 떠 오를 수 밖에 없다. 이왕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빨리 푸는 것이 낫다. 미적거리다가는 국회에서 동네북 신세가 될 수 있다. 통신요금에 관해서는 여야의 구분이 없다. 방통위가 요금인하를 서두를 수 밖에 없는 다급한 사정이다. 야당은 방통위에 대해 칼을 갈고 있다. 공격포인트를 하나라도 줄이는 게 방통위로선 최선의 선택이다.



이번 요금인하에 대해 소비자들은 일단 긍정적이다. 단 돈 1원이라도 내리면 그만큼 가게 부담이 덜어 좋은 것이다.  소비자들이 요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통신사별로 차별된 내용을 담은 것도 과거에 비하면 진일보한 정책이다.

하지만 통신요금 논쟁이 해소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시민단체는 정부의 이번 통신요금 인하가 미흡하다며 기본료 인하와 SMS무료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논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통신사업자들 입장도 흔쾌한 표정이 아니다.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정부가 행정지도 카드를 꺼낼 움직임을 보이는 등 압박을 가한 게 사실이다. 떠밀려 요금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정부는 통신사업자에게 요금을 내려라 마라고 요구할 권한이 없다. 다만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을 인가해 줄 뿐이다.
지배적 사업자가 아닌 사업자는 요금약관을 신고하면 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관여해 통신요금을 내리기 위해 “사업자의 팔을 비틀었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이 노력해 얻은 수익을 무조건 요금 인하로 연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하고싶다면 다시 통신사를 정부가 인수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이번처럼 정책의 편법이 관행이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가만이 있으면 이통사들이 알아서 제때 요금을 내릴 것인가.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미루면 그만큼 이익이 남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 기회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통신 요금체계나 결정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완전한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소비자가 사업자별 요금제를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나 국회는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며 여론이 나쁠 때마다 ‘쩐의 전쟁“을 벌인 생각인가. 그게 아니라면 통신요금이 대선 공약사항이 돼 ”20%인하“라는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도록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와 이통사업자. 학계 인사들이 가슴을 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통신요금을 둘러싼 ’쩐의 전쟁‘은 수시로 불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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