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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샤워실

암자일기

by 문성 2010. 6. 2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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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는 산사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한낮이면 흥건한 무더위로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럴 때 가장 인기있는 곳이 샤워실이다.



길상암의 사워실은 간이 시설이다.  말이 샤워실이지 속세의 시설과는 비교할 게 아니다.

남녀화장실 중간에 만든 세수간 겸 샤워장이다.



12시 점심공양을 마치면 가만히 있어도 폭염등살에 견딜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샤워장으로 달려 가는 게 상책이다.



길상암은 지하수를 사용했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라 차고 깨끗했다. 냉장고가 없어도 샘에서 물을 바가지로 떠마시면 얼음물처럼 시원해 감로수가 따로 없었다. 바가지로 가득 떠서 꿀꺽 꿀꺽 마시면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몇 안되는 절 식구들이지만 샤워를 하려면 사전 통지가 필요했다. 혹여 급히 화장실에 갈 경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처음에는 샤워를 하기 전 식구들이게 ‘사워 하러간다’고 미리 알렸다. 근처에 오지 말라는 사전 경고 성격이 강했다. 그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라’고 했다.


이튼날도 샤워신고를 했더니 ‘말 안해도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화장실로 가는 문이 꼭 닫혀 있으면 누군가 샤워 중이라는 것이다.



이럴 때는 누구도 화장실 근처에 오지 않았다.

이튼날부터 나는 신고를 하지 않고 샤워를 하러 갔다. 대신 사워를 끝내면 꼭 문을 열어 놓았다.



찬물을 몸에 끼엊으면 한방에 더위가 싹 사라졌다.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은 후 바가지에 퍼 몸에 끼얹으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수돗물과 비교할 수 없이 차가웠다.



산사는 공기가 맑아 먼지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샤워라고 해야 길어야 5분이면 충분했다.

몸에 물을 퍼 붙고 비누칠을 하고 다시 씻으면 끝이었다.



샤워 후에는 양말이나 속옷, 수건 등을 직접 빨았다. 물은 알칼리성이어서 때가 잘 빠졌다. 비누칠을 한 후 몇 번 쓱쓱 문지러면 금새 깨끗해졌다.  이를 툴툴 털어  햇볕에 널어 놓으면 금새 말랐다. 



다만 산사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모기란 녀석이 사람을 못 살게 만들었다. 산사 주변이 온통 숲이어서 모기가 밤낮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했다.


어느 날은 샤워를 하고 가려워 방에 올라가 살펴봤더니 등에 마치 찐빵이 부플듯 붉게 부어 있었다.

빨래는 방안에 널어 놓았다. 방안에 앞선 머문 사람이 옷걸이와 빨래줄을 미리 쳐 놓아 불편하지 않았다.



햇볕이 따가운 날은 혜성스님과 함께 요사채 방에 있는 이불과 방석 등을 모조리 내다 널어 일광욕을 시켰다.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문득 군생활을 할 때 일요일이면 담요를 햇볕에 널어 말리던 생각이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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