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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인연

암자일기

by 문성 2010. 6. 3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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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법화경에 나오는 경구다.

‘모든 법이 인연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는 뜻이다.

길상암에 요양할 때 그곳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른 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가슴아픈 사연을 숙명처럼 가슴에 묻고 사는 아이들이다. 거의 부모가 이혼했거나 아니면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부모 얼굴조차 모르는 기구한 팔자의 아이도 있었다. 당시에 중,고생 등 4명이 살았다. 중학생은 합천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생들은 대구나 창원 등지로 내보내 학교를 다니도록 했다.


평일에는 아이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산사에서 읍내에 있는 학교에 갈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고, 저녁이면 늦게 돌아왔다.

그런 산사가 시끌벅적하는 날은 주말이다. 객지로 나갔던 아이들이 산사로 오면 적막하던 길상암이 아이들로 인해 부산했다. 웃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동안 길상암에서 자라 사회로 나간 아이들만 4백 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미 가정을 꾸민 사람도 있고, 사회 생활을 하는 이도 있다.

명진 스님은 세속에서 상처를 안고 태어나 길상암으로 온 아이들은 부처님이 보낸 소중한 인연들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자라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 중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부산 신도가 어린아이를 길상암으로 데려왔는데 그날 밤부터 날마다 소통이 벌어졌다.

“방안에서 웬지린내가 이렇게 나는지 모르겠어요”

아침이면 아이들 방에너 난리가 났다.

알고보니 그 아이가 오줌을 가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아이는 오줌 싼 옷을 내놓지 않고 이불장 구석에 깊숙이 감춰놓았다. 며칠 지나면 방안에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타일르기도 하고 욱박지르기도 했으나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할 수없이 아이를 데려왔던 신도가 다시 아이를 데리고 갔다.

더 가슴아픈 일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한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마음 씀씀이도 대범해 절식구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는 고등학교 학생회장에 출마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선거가 과열하면서 그가 부모없이 고아로 길상암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여파로 선거에 떨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출생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그 학생은 길상암을 빠져 나와 방황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이 때 스님은 천도제를 지낸 뒤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만나 네 꿈을 마음껏 펼치라”고 기원하셨다고 한다.

스님은 여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길상암 아래로 내려가 홍류동 계곡에서 목욕을 시켰다. 아이들은 이 시간이 가장 신났다. 물장구치고, 물싸움하면서 노는 사이 스님은 아이들 옷을 빨아 바위위에 널어 말렸다.

지나가는 신도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 스님이 웬 아이들을 저렇게 많이 키우냐. 설마, 친자식은 아니겠지”

한 아이는 스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아 ‘업둥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호적을 만들어 주었다.

명진 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길상암에서 생활했던 아이들이 몇 명 다녀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과의 인연이 다했는지 자주 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시절인연이 다 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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