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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 섹스폰 보시

암자일기

by 문성 2010. 7. 1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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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사 음악회가 유행처럼 잦다. 그것도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불교도 세속속에 사는 종교다. 자연히 구각을 탈피하는 새 문화를 만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가야산 암자인 길상암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우선 장소가 좁다. 묘길상봉 아래 바위 위에 좌선하듯 자리잡은 길상암에서 그런 행사를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7월 하순. 더위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마치 태양이 뿔난 듯 했다. 바람 한줄기 없었다.

도시는 얼마나 더울까.

이런 더운 날씨에 흔히 스님들이 인용하는 기가 막힌 일화기 있다.

 

중국의 동산 양개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더위와 추위를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습니까”

“더울 때는 더위가 되고, 추울 때는 그대가 추위가 되라”

 

일반인들이 이말을 들으면 반응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 말 장난하나”

 

하지만 이 말속에 진한 0진리가 들어 있다. 천하의 누구도 자연의 변화를 이길 수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자연의 변화를 기계의 힘으로 대응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양개 선사의 이 말은 오직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라는 의미다.



주말이면 해인사 홍류동 계곡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

7월말 8월초 사이는 절정이었다. 길상암에서 앉아서도 피서객이 대충 얼마나 될지 알 수 있었다. 해인사로 올라가는 챠량소리로 짐작할 수 있었다.

피서와 나라 살림살이는 비례했다. 살림살이가 괜찮으면 피서객이 많았고, 경제가 나쁘면 피서객도 줄었다.



이날도 더위에 지쳐 낮 샤워를 한 뒤 마루에 앉아 망중한을 즐겼다.

점심공양도 하고 샤워까지 했으니 기분이 날아갈듯 상쾌했다.


그 때 느닷없이 계곡 아래에서 구슬프고 처량한 색소폰 소리가 들렸다. 구성지고 애상적인 트로트였다. 79년대 유행하던 “동숙의 노래” 등과 옛가요인 ‘두만강 ” 등을 연이어 불렀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마음 ...“

 

부처님 도량이어서 한 두 곡만 연주하다 그치려나 했더니 천만의 말씀이다.

내친김에 “가는 세월”에 “나그네 설음‘’울고 넘는 박달재‘ 등 트로트 몇 곡을 연속으로 연주했다.

.

누군지는 몰라도 홀로 산사연주회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홍류동 계곡물처럼 흘러간 세월의 허허함을 부처님 앞에서 색스폰으로 표현할 것은 아닐까.


그날 오후는 색스폰 보시에 한동안 정신을 빼앗겼다. 허공으로 멀리 퍼지는 색스폰 소리를 들으며 내 삶도 산바람처럼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흔적 없이 부는 바람처럼 인간의 삶도 그렇게 시간속에 소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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