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추석(秋夕).
추석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귀성객들의 긴 차량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95년 9월7일.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정보통신부 기자실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런 기자실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경상현 장관이 기자실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어“ 통신사업자 선정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하겠다”밝혔다. 경 장관은 "그간 공청회등 의견수렴과정을 거치는 동안 출연금에 의한 2단계 심사방법, PCS무선접속방식, CT-2와 무선호출의 사업자수 및 사업구역등 사업자선정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돼 추가 의견수렴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허가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 장관은 “당초 통신사업자 신청요령은 8월말 공고해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으나 이 계획을 변경해 허가신청 요령 공고는 올해만에 하고 사업자 선정은 내년 5-6월에 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한 달여 전인 8월10일 정보통신부는 통신사업자 허가요령 1차 시안을 발표하면서 12월 중 신규 통신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경 장관은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앞으로 좀더 시간을 두고 각계의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불필요한 논란과 업체의 불만 등을 해소한 후 합리적 선정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장관은 사업자 선정시기와 관련, "내년 4월 실시될 총선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5,6월께 선정작업을 마칠 가능성이 많다"면서 "논란이 돼온 출연금 방식의 2단계 심사방안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은 적다"고 강조했다.
경 장관의 이런 발표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들은 “왜 당초 방침을 바꿔 내년 상반기안에 사업자를 선정키로 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경 장관의 당시 답변 내용.
“그동안 기간통신사업자의 허가와 관련해 각계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좀 더 시간을 두고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허가 추진 일정은 당초보다 늦어지더라도 통신사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계획은 예정대로 추진할 것 입니다”
기자들이 다시 물었다.
“내년 4월에 치러질 15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일정연기를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경장관은 “그렇지 않다”며 정치권 요청설에 대해 선을 그었다.
당시 정국이 개각설 등으로 다소 유동적이긴 했으니 경 장관으로서는 당연한 대답이었다.
이와 관련한 경 장관의 회고.
“그 당시 정치권에서 사업자 선정 연기를 요청했거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정보통신부로서는 당초 발표한 대로 연내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했으나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고 시일도 촉박해 부득히 선정 시기를 연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내부 논의를 거쳤고 이런 점은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사전에 협의를 했습니다.”
잠삼이사(張三李四)들이야 통신사업자 선정시기 연기에 별관심이 없었지만 재계는 이 발표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사안이었다.
당장 재계는 통신사업권 획득의 일정과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그만큼 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시 이 사업에 참여했던 모그룹 A씨의 말.
“ 재계는 8월10일 정통부가 사업자허가 신청요령 1차 시안을 발표하자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1차 시안대로라면 11월까지 정부가 확정한 요령에 따라 사업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촉박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자 선정을 연기한다니 재계입장에서는 부담이 늘어나게 됐어요. 업체에 따라 다소간 온도차이는 있지만 불만의 소리도 나왔습니다. ”
그 무렵, 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그룹사들의 움직임새를 살펴보자.
재계가 가장 눈독을 들인 사업은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였다. 정보통신부가 1차 시안을 발표하자 재계는 사업자 신청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정부가 선정키로 한 PCS사업자는 3개였다. 이 중 하나는 정부의 주도적 통신사업자 육성방침에 따라 사실상 한국통신이 내정된 상태였다. 이런 방침은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IT리더스포럼 회장)시절 이마 확정한 상태였다.
윤 장관의 회고.
“당시 PCS사업자는 1개만 허가하기로 했어요. 아직 기술이나 시장여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1개만 허가하되 구체적으로 어디라고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한국통신에 주는 것으로 결정을 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정보통신정책실장이던 박성득 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 회장)의 증언.
“외부에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은 혹시 기술개발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미리 발표를 하면 나태해 수 있어 1개 사업자만 선정한다는 방침만 발표했습니다”
기업들은 남은 2개의 PCS사업권을 따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재계는 PCS가 재계판도를 뒤바꿀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단정했다. 재계는 오는 2000년까지 빠르게 보급이 늘어나 가입자가 최소 1천만 명에 달해 연간 통신요금 시장이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계의 삿바싸움이 치열했다.
그런만큼 이 사업권에 도전한 업체의 얼굴은 화려했다. 삼성과 현대, LG, 대우 등 이른바 ‘빅4’를 비롯해 포항제철과 코오롱, 동양, 효성, 한솔 등이었다. 이들은 독자 혹은 컨소시엄 구성 등 다양한 형태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이들 기업은 통신시장의 조직 확대와 인력보강에도 열을 올렸다.
삼성은 그해 7월 1일 그룹회장비서실의 통신사업팀을 서비스부문과 장비부문으로 확대 개편했다. 그리고 남궁석 삼성데이타시스템사장(정통부 장관. 16대 국회의원. 국회사무총장 역임. 작고)을 총괄팀장으로 임명했다.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데이타시스템 등 3개 계열사 인력으로 전담팀을 구성했다. 그후 계열사 별로 연구 인력을 추가로 선발해 전략팀에 배치하고 국내외 연구기관에서도 박사급 연구인력 유치에 나섰다.
LG그룹은 통신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헌조 LG전자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LG전자와 LG정보통신, LG산전, LG-EDS시스템 등 4개사 관련 인력을 동원했다.
LG그룹은 PCS사업 추진을 위해 6월말 전 한국통신사업개발단장인 유완영 박사(오리온전기 사장.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 역임)를 LG전자 전무로 영입했다.
현대는 정몽헌 현대전자회장(현대그룹회장 역임. 작고)이 통신사업을 총괄했다. 현대는 95년 4월 홍성원 박사(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KAIST서울분원장.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회장 역임)을 현대전자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현대는 글로벌스타 사업을 위해 홍 박사를 영입했으나 이후 PCS사업권을 얻기 위해 홍 박사에게 통신사업 전반을 맡겼다. 현대는 삼성과 PCS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연합컨소시엄인 ‘에버넷’을 구성했다.
홍 박사의 기억.
“제가 간 후 PCS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이 업무까지 맡게 됐습니다. 삼성의 남궁석 사장과 파트너가 돼 ‘에버넷’을 설립했는데 이듬해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대우는 김우중 회장 지시로 그해 7월15일 박용근 회장비서실사장(KBS정치부장. 대우그룹 일본 지역본사사장 역임)을 팀장으로 PCS와 국제전화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밖에 다른 기업들도 출전재비에 바빴다.
이처럼 각 사별로 통신레이스에 나선 상황에서 사업자 선정이 6개월 가량 늦취지자 재계는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모그룹에서 통신사업을 추진했던 B씨의 당시 상황에 대한 회고.
“ 정부가 사업선정 시기를 연기하자 이런 저런 해석이 많았어요. 정치적 고려나 논리가 경제를 우선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정부 발표대로 사전준비가 미흡해 불가피하게 시가를 연기한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저는 정부가 발표한 선정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실제 사업제안서 제출시한 발표가 늦어졌거던요. ”
재계에서는 98년으로 예상되는 기본통신시장의 개방에 대비, 국내 통신사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조기에 국내경쟁을 확대하겠다는 당초의 통신정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역대 정권에서 이권사업마다 묘한 징크스가 뒤따랐다. 사업자 발표 이후 어김없이 정치권이 개입했고 뒷날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탈락한 기업이 정치 아궁이에 특혜시비라는 불을 지피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노태우 정부시절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문제였다. 95년 하반기에는 PCS사업자 선정을 놓고 제2이동통신 선정에 못지 않은 과열 조짐을 보였다. 자칫 사업자 선정을 서둘다간 특혜시비가 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후폭풍의 위력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사업자 선정 연기에 정치적인 고려를 전혀 안했다고 할 수는 없다.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야당의 사업권 선정과 관련해 공세가 거셀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10월의 국정감사, 이듬해 4월의 총선 등 정치 일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PCS 기술표준을 놓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정부 부처 간, 국내 업체간에 단일표준이나 아니면 복수표준이냐를 놓고 서로 논쟁을 벌였다.(이 문제는 나중에 상세하게 다시 다루기로 한다) 정보통신부는 경제성과 기술발전가능성 등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국익이냐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이권이 달린 사업자 선정은 이처럼 변수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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