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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맛' 선배들과의 점심 토크

여행. 맛집. 일상

by 문성 2009. 10. 2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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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골목.
시공을 넘어 고전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골동품 가게 40%가 이 곳에 있다고 합니다. 이 곳에 가면 “우리 것이 귀하고 좋은 것이여”란 말을 실감합니다. 서예와 도자기. 차기, 민속악세사리 등이 가게마다 즐비합니다. 전통문화의 거리란 말이 가슴에 와 안깁니다.  신기한듯 전통공예를 구경하는 미국. 일본 등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볼 수 있더군다.
  인사동에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이 운영하는 찻집 ‘귀천’이 있습니다. 시인은 세상 소풍을 끝내고 그의 시어처럼 하늘로 돌아 갔고, 찻집에는 그의 사진과 시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은 이 시를 70년대 발표했는데 ‘주일(主日)’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OB들의 수다


그 귀천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한식집 ‘옥정’에서 선배들과 어제 낮에 만났습니다.
자칭 'OB모임'이라고 부릅니다. 올드 보이 들이니까요.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지난 5월초에 만난뒤 더운 여름과 추석 등을 보내느라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격의없이 정담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 모임에는 편집국 출신 선,후배 6명이 참석합니다. 노 전 주필이 처음 이 모임을 주관했습니다.  밥값도 거의 다 내셨습니다. 박 전 이사와 이 전 주필, 김 전 소장, 박 전 부사장, 그리고 제가 고정입니다.


노 주필은 동아일보에서 법조를 출입하며 민완기자로 필명을 날렸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매체 영향력이 대단했지요. 제가 근무한 신문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신문의 오늘이 있게 한 분입니다.
 회사를 떠난 후에는 인터넷 미디어인 ‘오라뉴스’를 발행하셨습니다. 일에 관한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입니다. 후배로서 존경스럽지요. 나도 저 나이가 될 때 저렇게 열정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박 이사와 이 주필은 동아일보 입사 동기입니다. 노 주필의 신문사 후배들이지요.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74년 동아투위에 참석해 한때 고초를 겪기도 했답니다. 이후 다른 언론사를 거쳐 신문 편집부국장, 국장 등을 지냈습니다. 박 이사는 퇴직후 ‘디지털타임스’를 창간해 초대 편집국장을 맡았고 이어 YTN 사외이사를 지냈습니다.  최근에는 귀향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서산에 있는 전원주택단지에 입주하기 위해 귀촌교육에 자주 참석한다고 하더군요. 소나무 숲 가운데 자리잡은 주택단지터가 아주 좋더군요.  


 이 주필은 퇴직 후 언론중재위원을 지내고 현재 분당 주택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배추와 고추 등을 재배한답니다. 도심에서 농사짓는 셈이죠. 이 주필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입니다. 수지 침을 배워 해외 봉사활동도 한 바 있습니다. 요즘 서예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분입니다.


김 소장은 외국어에 능통해 언론계에 몸담기 전 3공 시절 국회의장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편집부국장과 통일정보통신연구소장을 역임했습니다. 지금도 번역 일을 하고 있답니다. 아직도 저는 그 분이 큰소리 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박 부사장은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거쳐 편집인으로 일했습니다. 신문에 청춘을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양심에 가슬리는 일은 절대 못하는 분입니다. 다정다감하죠.
 제가 그 뒤를 이어 편집국장과 논설주간을 맡았습니다. 박 부사장도 한동안 백수로 지냈습니다. 

저는 아직도 빈손입니다. 빨리 백수신세를 면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야 박 부사장과 밥값은 나눠 내면서 선배들을 모실텐데 그렇게되도록 노력해야 겠지요.  
 모두 법이 없어도 세상을  바르게 살 분들입니다. 모두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면 만사가 귀찮지 않습니까. 그것은 제가 이미 한번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선배들과의 점심은 이래 저래 즐겁고 반가운 자리입니다.  

알딸딸한 반주의 향수 

 노 주필이 편집국장 시절 나머지는 그 휘하에서 일했습니다.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습니다. 이날 모임은 박 부사장이 주관했습니다. 고정 월급을 받는다며 지난번에 이어 점심을  샀습니다. 노 주필과 밥값을 서로 낼려고 하더군요.

 이날 반주로 소주 2병을 시켰습니다. 그동안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 금주를 했는데 얼마전 저도 술을 마시겠다고 했더니 반주가 두 병으로 늘었습니다. 낮술을 하니까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오르는 게 옛날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노 주필을  편집국장으로 모시고 일할 때 점심 먹으러 가면 꼭 소주를 한 잔 씩 마셨거든요. 지나고 보면 다 그리운 추억입니다. 

  선.후배간이라 만나면 그냥 반갑고 즐겁습니다. 서로 속을 다 아니 조신하게 굴거나 체면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그래 봤자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 신세거든요. 하루 이틀 같이 일한 게 아닙니다. 서로의 밑천을 다 알고 있습니다.

선배들은 삶의 트레이너  
 선배들을 만나면 그들한테 소중한 삶의 지혜를 얻습니다. 돈주고 살 수 없는 인생의 교훈입니다.  세상살이는 이론이 아닙니다.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생은 살아봐야 압니다. 그런 점에서 선배들은 '삶의 트레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나면 가슴을 열어놓고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간혹 이견이 있어도 금새 풀어집니다.  주제는 살아가는 일, 주변의 일, 자기 생각, 고민, 과거 일 등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술잔이 오가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보면 웃음소리가 방밖으로 퍼저 나가기도 합니다.  과거 편집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도 있습니다. 

  선배들 그늘에서 지낼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앞만 보고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선배들이 바람막이가 돼 주어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그 때는 미처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는 말이 맞습니다.   추억은 아쉬움을 낳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지난날 그 자리에서 더 잘할 걸 하는 반성을 합니다. 앞으로는 후회하지 않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박 부사장이 다음 모임 일정을 정해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자연도 이별 연습하는 이 가을에 헤어질 때는 서로 서운하지요.
"또 가을이 가는 구나. 이번 가을에 이런 모임은 다시는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에 찬 바람이 휭 불지요.
하지만 다시 만날 때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잡았던 손을 놓고 돌아섭니다.  ‘귀천’이 아닌 ‘귀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다가 길었습니다.  가을 바람에 날리는 노란 낙엽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서산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아름답게 보이고요. 이게 다 계절 탓인가요, 아니면 나이탓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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